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 번만 운다고 한다.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나라가 망했을 때
그런데 남자의 눈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여성들에게는 다소 낯선 말일지도 모르지만 남자들이 소변기
앞에 서면 늘 마주치는 글이 하나 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한 발만 더 가까이.
왜 남자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걸까
정말 세 번만 우는 남자들이 있기는 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들의 가슴은 과연 따듯하기나 한 걸까.
공원을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스르르 낙엽이 뒹구는 소리에 놀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석양은 붉게 물드는데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핑 고였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텅 비어있는 집.
잠시 소파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데 그 순간
알 수 없는 어떤 풍경들이 스멀스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휴대폰.
습관처럼 카톡속에 저장되어 있는 내 가족방을 찾았다.
아들과 딸은 친구들을 만나고 있고 와이프는 계모임을
하고 있다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욕실로 들어섰다. 우선 샴푸를
듬뿍 짜서 머리부터 감고 샤워 타올에 바디워시를 진하게
묻혀서 온몸을 씻어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깨끗해진 몸과는 달리 마음속에는 공허한
어떤 무거운 생각들이 여전히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거울 앞에 섰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왜 그럴까!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근심 걱정도 없이 모든 일들이 그저 행복하기만 한데.......
나는 소싯적에 외로움을 참 많이 안고 자랐다
내 나이 세 살 때 그러니까 어머니의 나이 서른여덟에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셨다.
형제들 중에 막둥이로 태어나서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빈 공간이
너무 컸다
그때는 아버지가 있는 친구들이 왜 그렇게 부러웠는지.
아버지가 없던 사춘기 시절! 무던히도 방황을 했다.
형님 내외는 무엇 때문에 그리 자주 다투는지?
두 분의 싸움은 곧 어머니와 나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싸울 때 마다 안절부절 늘 노심초사 하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얼굴. 그 모습을 곁에서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던 내 마음. 내 가슴앓이!
이것이 방황의 전부가 아니었다.
성적표를 받아오는 날이면 온 몸이 겁에 질렸다
공부를 잘 해도 맞고 못해도 맞고 왜 맞아야 하는지.
학교는 무엇 때문에 다녀야 하는지!
학교를 때려치우고 도망을 가버릴까!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정말이지 그때는 사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그럴 때면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고
기대어 보고 싶은 누군가가 필요했지만 정작 나는
친구도 가족도 그 누구에게도 나는 내 마음을 쉽게
보여 줄 수가 없었다.
이때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물론 곁에 어머니가 계셨지만 이른 나이에 홀로된 탓인지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무언가에 쫓기듯 늘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고 “뇌신” 이라는 약을 매일같이 드셨는데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에게 내 속마음을 보인다면 행여 걱정을 하실까봐
아무 말도 못하고 나 홀로 끙끙 속앓이를 해야 했다.

이런 나의 방황은 군대를 가고 나서야 비로소 끝을 맺었다.
나는 이렇게 큰 형님과 홀어머니 밑에서 힘든 사춘기를
보내며 자랐다
가을 날 혼자 있게 되는 날이면 문득 계절병처럼 떠오르는
그때 그 시절.
생각하기도 싫은 그 시절.
잊어버리려고 해도 마음에 걸려 풀리지 않는 시름.
아련하게 떠오르는 두려움, 외로움, 애처로움, 서러움이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내 가슴을 후벼 파며 아프게 한다.
남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가을을 탄다고 한다.
나는 지금 가을을 타는 것이 아니라 가을을 앓고 있다
석양이 물들고 찬바람이 부는 오늘처럼 문득 홀로 있게
되는 날. 어김없이 계절병처럼 그때 그 시절 풍경이
*똬리를 틀며 되살아나 나를 슬프게 한다.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거울 앞에 서 있다
또다시 흐르는 눈물.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가슴속에 응어리진 어떤 슬픔 하나가 내 몸속에서 씻겨져
내려간 듯 갑자기 내 영혼이 맑아졌다
그제서야 상큼한 가을 향기에 이끌려 창가에 섰다
수많은 차량들이 쉴 새 없이 스쳐가는 거리위로
노란 은행잎이 어찌나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지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을 만큼 황홀하기 그지없다.
한 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별천지가 따로 없다.
찬바람 부는 가을 날.
해가 질 무렵 갑자기 혼자 있게 되는 날!
그래서 외롭다고 느껴지면 나는 이렇게 울음을 쏟아낸다
그 누가!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 만 울어야 한다."고 했던가.
물론 나 자신도 알고 있다
남자가 눈물이 너무 헤퍼서도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이 말은 세상 모든 남성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이런 잘못된 믿음 때문에 '남자는 강해야 한다. 때로는
'눈물을 드러내는 건 남자답지 못하다'는 등의 부당한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가을을 타는 남자들이여!
가을을 앓는 남자들이여!
남자는 딱 세 번만 울어야 된다는 그 허튼 소리 당장
걷어치우고
울고 싶을 때 울어라!
소리 없이 울어라!
혼자서 울어라!
실컷 울어서
이 가을이 아름다울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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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똬리를 틀다 (관용구) : (생각 따위가)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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