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소리가 너무 크다고
와이프한테 자주 구박을 받는다.
작년 직장 건강 검진에서 청력에 별 문제가 없었는데
혹여 나이 탓은 아닌지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데.
소싯적에 우리 골목에 심한 난청으로 장애를 앓고 있는
특이한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귀에 입을 바짝 대고 고함을 질러야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귀가 어두웠던 할아버지는 의외로 짜증을
내거나 불평을 하는 일이 없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늘 고개를 끄덕이며 싱글벙글 웃으셨다.
그렇다면 청각 장애인인 할아버지가 어떻게 매일같이
웃으며 살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자기 나름대로 어떤 철학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기에서 귀 얘기가 나왔으니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귀 건강에 대한 일화 하나를 살짝 엿보고 가기로 하자.
할아버지 한 분이 뒷짐을 진 채 한가롭게 거리를 나섰다.
때마침 길거리에서 모 업체가 건강 보조식품을 팔기
위해서 노인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는데 선물을 공짜로
준다는 말에 현혹된 할아버지가 마침내 행사장을 찾았다.
그때 강사 한 분이 몸에 좋다는 보조식품을 홍보하면서
덤으로 귀에 관한 그럴듯한 정보 하나를 알려주었다.
100미터 밖에서 아내를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면
귀가 조금 먹은 거고 50미터 밖에서 불렀는데 대답을
못하면 귀가 제법 먹은 거고 10미터 밖에서 불렀는데
대답을 못하면 아주 심각한 상태라고…….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던 할아버지는 자기 아내의
귀가 어느 정도인지 직접 시험해 보기로 했다.
이리 저리 거리를 재던 할아버지가 100미터쯤에서
아내를 불렀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대답이 없었다.
아! 마누라가 귀가 먹긴 먹었나 보다.
다시 50미터쯤 거리에서 아내를 불렀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역시 대답이 없다.
아! 내 마누라가 이정도로 귀를 먹었단 말인가!
다시 10미터 거리에서 아내를 불렀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또 대답이 없다!
아! 내 마누라가 맛이 가도 이렇게 까지 갈 줄이야!
짠한 마음에 한숨을 지며 집에 들어서는 그때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측은한 마음에 할아버지가 뒤에서 할머니의 허리를
살포시 감싸 안으며 귓전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 오늘저녁 메뉴가 뭐야!
아내가 말했다.
.
.
.
.
.
.
.
.
.
애고! 이 C 발 놈의 영감탱이야!
내가 아까부터 '수제비'라고 몇 번을 말했어?
대단한 반전(反轉)이 아닐 수 없다. 사실은 귀가 먹은 쪽은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비록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나이가 들면서 새삼 귀 건강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한 편의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동네 할아버지 얘기로 돌아가 보자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웠지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이었다
동네에서 오지랖이 넓기로 유명한 아저씨 한 분이
할아버지에게 말을 물었다.
어르신!
뭐가 그리 좋아서 날마다 헤헤헤 웃으세요?
아저씨의 물음에 배시시 웃던 할아버지가 하는 말
이 사람아. 사람을 보면 웃어야지. 그렇지 않아?
할아버지의 되물음에 멈칫하던 아저씨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어르신!
귀가 먹었는데 뭐가 좋아서 웃음이 나 오냐고요?
이 사람아. 사람은 세월을 거스를 수가 없어!
누구나 자기 몸이 늙어가는 것을 인정해야 되.
그러면 웃기 싫어도 웃고 울고 싶어도 웃음이 나와!
그때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아저씨가
갑자기 툭 한마디를 내뱉고 돌아섰다.
애고! 영감탱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답답해 죽겠네.
그때 곁에 있던 할머니가 말했다
별 싱거운 사람 다 보겠네.
답답한 건 우리 영감님인데 자기가 왜 답답해?
할머니는 돌아서는 그를 향해 픽 코웃음을 쳤다
그 동안 할아버지가 늘 웃을 수 있었던 것은
늙어가는 자신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긍정적인
사고가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근래 들어 내 몸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머리를 감을 때 마다 한 움큼씩 빠져나는 머리카락,
계급장처럼 늘어만 가는 이마의 주름살과 여기에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 눈과 귀까지.
그러나 어이하랴!
흐르는 물이 다시 돌아올 수 없듯
내 청춘도 다시 올 수 없는 것을.......
나 역시 할아버지처럼 늙어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여야겠다.
그것이 곧 현명한 삶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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