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 어느 가을날!
할머님이 뒷마당에서 감을 따고 계셨다.
딴 감은 깎아서 싸릿대에 꿰어 새끼줄로 줄줄이
엮어서 처마 밑에 걸어 놓고 말렸는데.
여기에는 얄궂은 내 추억이 하나 숨어 있다.
할머니 몰래 까치발을 해가며 곶감을 한 개씩
한 개씩 빼 먹었데 그때마다 할머니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빠진 감의 사이를 살짝살짝 벌려 놓았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그러던 어느 날 그만 할머니 눈에 딱 걸렸다.
야, 이놈아!
곶감을 제사 때 쓰려고 만들어 놓은 건데
네가 다 빼 먹어버리면 이제 제사도 못 지낸다.
할머니의 고함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릴 때 내가 제일 좋아했던 날이 설날, 추석날
그리고 제삿날이었는데 제사를 지낼 수 없다니
그 뒤로 더 이상 곶감을 빼먹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
곶감을 보면 문득 그때 그 시절 할머니 생각에
나도 모르게 씩 웃음이 절로 나온다.
우리 속담에
“곶감꼬치에서 곶감 빼먹듯”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알뜰히 모아 둔 것을 힘들이지 않고
하나씩 빼어 먹어서 없앤다는 뜻으로
‘실속 없는 소비’를 일컫는 말이다.
요즘 6개월째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비록 건강 때문이기는 하나 실업자로 지내다보니
집안의 가장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뿐만이 이니다. 곶감꼬치에서 곶감 빼먹 듯
통장의 잔고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데 이 또한
결코 좌시하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다행히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지금.
다시 취업을 하기 위해 며칠 전 중장비 학원에서
지게차 운전 면허증을 취득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떨어지는 것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돈 떨어지는 것과 기운 떨어지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나 역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갈수록 이 말이 무척 실감이 난다.
그렇다면 나이 들어 돈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답은 딱 한 가지!
늦은 나이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것.
한편 최근 유엔(UN)이 세계 인류의 평균수명을
측정하여 연령 분류의 기준을 새롭게 5단계로
발표했다.
위의 그림을 보면 지금의 내 나이 예순 넷은
한창 일을 해야 될 청년으로 나와 있다.
세상에 예순 넷이 청년이라니 이러다가 관 뚜껑에
못 질 할 때 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이럴 때는새삼 삶에 회의를 느낀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몇 살까지 돈을 벌어야 할까.
2024년 말 우리나라 전체 주민등록 인구 5,126만 명 중에
65세 이상의 노령인구의 비율이 20%로 1,000만 명을
돌파 했다고 한다.
참고로 아래 도표는 2024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다
위의 도표를 요약해 보면 우리나라의 2024년말 65세
이상의 고용률이 37.3%로 나타나는데 이를 환산하면
1,000만명 중에 352만 5천여 명의 인구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현직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더 쉽게 풀이하면 65세 이상의 3분의 1이 여전히 돈을
벌고 있다는 얘기다
공식적인 통계가 이러할 진데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비공식 통계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렇다면 이 많은 숫자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만화방창 온갖 꽃들이 만발하는 새봄이 왔다
그런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라고 했던가!
이 말이 지금의 내 현실과 딱 들어맞는다.
늦게 까지 일을 해야 하는 내 신세가 봄이 왔어도
봄날 같지가 않으니 봄을 느낄 수도 없고........
애고. 이래저래 생각이 깊어지는 봄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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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방창 (명사) : 따뜻한 봄이 되어 온갖 생물이 나서 자람.
* 춘래불사춘(명사) :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으로,
어떤 처지나 상황이 때에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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