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삽을 들고/이야기꽃

애비

by 소담* 2025. 2. 22.

딸이 퇴근을 하면서 캐리어 두개를 가져 왔다.

 

오늘도 딸은 어제처럼 평소에 즐겨 입던 옷들을

가방 안에 차곡차곡 넣고 있는데 이런 일이

벌써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묵묵히 옷을 챙기는 딸의 뒷모습을 볼 때 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지 나도 모르게

그만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는 떠나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딸도

보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도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은 똑같을 터.

 

딸과 나는 짐을 싸는 내내 아무 말도 없었다.

 

이윽고 딸이 캐리어에 옷을 가득 챙겼다.

 

딸과 함께 가방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서는 길.

 

때마침 딸의 남자 친구가 마중을 와 있었는데.

 

딸을 바래다주고 조용히 딸 방으로 들어섰다

방에는 아직까지 딸의 체취가 완연 하건만

텅 빈 방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공기에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 딸자식을 키우는 마음이 이런 것인가.

 

딸과 함께 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상념에

젖어있는 그때 안방에서 와이프가 나를 불렀다.

 

듣는 둥 마는 둥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기 위해

소파에 앉아 한참을 머물다 안방으로 들어섰다.

 

다음 날 아침!

 

와이프가 살그머니 딸의 방을 둘러보더니

뜬금없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애고! 마음이 착잡하네!

 

딸이 가방을 챙기고 나갈 때 마다 모르는 척

배웅도 하지 않던 와이프가 사실 속마음은

나와 똑같았었구나! 라는 생각에 얼른

와이프를 위로 해 주었다.

 

이 사람아!

신혼집이 넘어지면 코가 닿을 만큼 가까운데

뭐가 그리 아쉬워서 한 숨인가.

 

나의 위로에 힘을 얻었던 것일까!

굳어있던 와이프의 얼굴이 금세 환하게 밝아졌다.

 

 

어느 날 이었다.

 

딸이 남자친구를 소개했다.

 

곧 이어서 양가 부모님의 상견례가 있었고

마침내 결혼 날짜가 잡혔다.

 

나는 사위가 될 남자친구에게 딱 한 가지를 부탁했다.

 

이보게.

나는 딸을 키울 때 손찌검 한 번 하지 않았네.

그 덕인지 딸은 성격이 무척 쾌활하고 정도 많고

심성이 참 곱게 자랐어!

우스갯소리지만 이렇게 착한 딸 일 줄 알았다면

딸을 하나 더 낳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네!

그래서 하는 얘긴데 내가 이렇게 곱게 키운 딸을

이제 자네에게 맡기겠네.

그러니까 자네도 내 딸 많이 사랑해 주게나.

 

이 말 외에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싸우지 마라!

잘 살아라!

행복해라!

 

이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부부가 살다보면! 어찌 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잘 사는 것도 행복도 결국은 딸과 사위가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222일 오늘은 딸의 결혼식 날이다.

 

아침 일찍 예식장에 도착해서 딸과 사위 그리고

양가 부모들과 함께 분단장을 마치고 시간에 맞춰

하객들을 응대하는 시간이 되었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하객들이 참석 했는데

멀리서 찾아준 형제들과 친구들을 만날 때 어찌나

반갑던지 드디어 오늘이 딸 결혼식 날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하객들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사회를 맡게 될 딸의

여자 친구가 별안간 내게로 다가왔다.

 

아버님!

오늘 식장에서 딸과 눈 절대 마주치지 마세요!

제가 보름 전에 결혼했는데 우리 아빠가 어찌나

눈물을 보였는지 제가 엄청 힘들었거든요.

딸 힘들지 않게 오늘 눈물 보이지 마세요.

아시겠죠!

 

사회자의 부탁과 함께 드디어 예식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주인공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부 입장!

 

하객들의 열렬한 축복속에 딸과 손을 맞잡고

한 걸음 한걸음 무대위로 오르자 기다리고 있던

사위가 저쪽에서 딸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곁으로

뚜벅뚜벅 다가왔다

 

나는 사위를 꼭 안아주며 귓속말을 전했다.

 

내 딸 잘 부탁하네!

 

그렇게 딸을 사위에게 맡기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의자에 앉아서 숨죽이며 바라본 내 딸.

 

새하얀 드레스에 내 딸 모습이 왜 이리 예쁜지........

 

감정에 북받쳐서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 했지만

그때 마다 IMF시절 금융회사에 다닐 때의

힘들었던 풍경을 떠올리며 애써 눈물을 삼켰다.

 

 

그렇게 마침내 성대했던 예식이 모두 끝이 났다.

 

새벽녘 신혼여행을 가기위해 공항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해 터미널에서 다시 만난 딸과 사위.

 

이윽고 기다리던 차가 도착하고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딸과 사위를 실은 버스가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서서히 멀어져 가는데.

 

그때 문득 딸에게 차마 전해주지 못한 얘기

하나가 입안에서 자꾸만 빙빙 맴을 돌았다.

 

잘살아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 나도 영락없이 어쩔 수 없는 애비다.

 

 

'♣ 꽃삽을 들고 > 이야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몇 살까지 돈을 벌어야 할까!  (0) 2025.04.09
하늘아래 같이 산다는 것  (4) 2024.12.20
결혼기념일의 불청객  (12) 2024.12.09
호박대국과 고춧잎 무침  (4) 2024.11.30
덤으로 주는 인심!  (10) 2024.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