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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삽을 들고/웃음꽃

난리 블루스(亂離blues)

by 소담* 2022. 8. 9.

대청천을 거닐다 텃밭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텃밭이 많이 깃었는데

놀고 있는 땅이 안타까워서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텃밭이 많이 *깃었네요.

혹시 힘드시면 텃밭을 저한데 맡겨주세요

나중에 수확한 채소들은 서로 *뭇갈림 하면

할머니도 좋고 저도 좋고 서로가 좋을 텐데.......

 

그 순간 할머니가 씩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찬바람이 불면 마늘도 심고 양파도 심을 거라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텃밭을 가꾸고 있는 분들을 만나면

왠지 그들이 부러웠다.

 

이 넓은 대한민국 땅에 나는 왜 밭뙈기 하나도 없을까.

 

아쉬운 마음에 그때마다 기도를 드렸다.

 

내게도 텃밭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어느 날 갑자기 내게도 밭이 생겼다

텃밭과 밭뙈기를 뛰어 넘어 무려 이백평의 제법 큰 땅이다.

 

한 달 전.

 

밭에서 여느 날 처럼 부추를 뜯고 있는데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나를 불렀다.

 

사장님!

부추 밭이 엄청 크네요.

 

부럽게 바라보는 이들 부부에게 나는 보란 듯이 이렇게 전해 주었다.

 

부추를 좋아하면 먹을 수 있을 만큼 뜯어 가시라고!

 

그러자 믿기지 않는 듯 그가 '정말 그래도 되겠냐!' 고 물어 왔다.

 

그럼요. 부추는 밟지 마시고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뜯어 가셔도 됩니다.

 

한참 후 비닐봉지에 부추를 가득 채운 부부가 내게 인사를 건네 왔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살다보니 텃밭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사장님 소릴 다 들었다.

 

일주일 후!

 

아침 일찍 부추 밭으로 달려갔다.

한 참 부추를 뜯고 있는데 저 번 주에 만났던 부부가

우리 밭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늘 부추 좀 뜯어가려고 하는데 괜찮지요?

 

, 많이 뜯어 가세요!

 

그 뒤로도 일요일 날이면 어김없이 이들 부부를 만났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오늘은 이들 부부에게 양심선언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이 밭은 내 땅이 아니다.

 

 

 

 

이 밭은 원래 주인이 비닐하우스를 짓고 부추를 재배했으나

다음 달이면 주택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 올 예정이어서

토지를 보상 받고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니까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까지는 주인이 없는 땅이 된 것이다.

 

이런 사정을 부부에게 알려주고 나니

그 동안 주인인 척 으시댔던 내가 잠시 부끄러워 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아저씨가 혼자서 부추를 뜯으러 왔다.

 

오늘은 아주머니가 안 보이네요.” 라고 묻자

아저씨가 망설거리더니 이상한 말을남겼다.

 

그 동안 부추를 먹고 힘이 나서 와이프를 많이 안아주었는데

이제는 아내가 잠자리가 두렵다고 자기를 멀리한다고.......

그러면서 제발 부추 좀 그만 뜯어오라고 손을 싹싹 빌더란다.

 

허허허 그 것 참. 민망하네.

 

이 아저씨가 은근히 내게 힘자랑을 하고 있지 않은가.

 

부추는 지방에  따라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정력을 오래 유지 한다고 해서 정구지(精久持) 라고도 하고 

양기를 돋운다고 해서 기양초(起陽草)라고 부르기도 해서

남자들에게 좋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추 밭에서 서너 번 만난 것이

고작인데 감히 내 앞에서 힘자랑이라니.......

갑자기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와이프가 나를 불렀다.

 

미래 아빠! 놀면 뭐해요.

아침 먹고 날도 시원한데 밭에 가서 부추 좀 뜯어 와요.

 

같이 갔으면 좋으련만 와이프는 세탁기도 돌리고 청소도 하고

반찬도 만들어야 한다고 혼자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아침을 먹고 문밖을 나서는 그 때

와이프가 빼꼼히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며 나를 불렀다

 

미래 아빠!

여기에다 뜯어오세요

그러면서 무언가를 문밖으로 휙 던져주었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보니 며칠 전에 샀던 쌀 포대가 아닌가!

작은 비닐봉지 하나면 충분할 것 같아서 딸랑 봉지 하나만 챙겼는데

20kg짜리 쌀 포대라니 이런 와이프를 도통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이하랴!

사나이가 길을 나섰으면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법.

 

자전거에 앉은 순간!

 

그때 문득 텃밭에서 만났던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와이프는 제발 부추 좀 그만 뜯어오라고

손을 싹싹 빌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 와이프는 뭐가 부족해서 비닐봉지도 아니고

쌀 포대를 던져주며 이렇게 *난리블루스란 말인가!

 

혹여 내가 힘이 없어서 그렇다면

이거 사나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부추 밭으로 가는 길.

 

저 멀리 조만강의 자욱한 물안개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강가에 드리워진 대나무 숲 물그림자 위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어찌나 멋있던지 마치 몽환 속을 걷는 기분인데.......

 

드디어 부추 밭에 도착했다.

 

30여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포대에 가득찬 부추를 자전거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자

와이프가 나를 반갑게 맞이 해주는데.

 

애고! 우리 서방님 수고했어요.라고 하더니

그 순간 느닷없이 내 볼에  뽀뽀를 해 주었다

 

지금까지 겪은 일이지만 이럴 때 열에 아홉은

뭔가를 부탁하기 위해서 부리는 깜짝쇼가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와이프가 티끌과 마른 잎을 골라내는 선별작업을 부탁해 왔다.

 

 

 

 

무려 한 시간에 걸친 선별작업이 끝나자 와이프가 별안간 여러 개의

비닐봉지를 챙겨 들고 부추를 담기 시작하는데.

 

세 개는 자기 회사 직원들을 위해 두 개는 우리 직원들을 위해

또 두 개는 양쪽 이웃집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 두 개는 

다음 주에 만나게 될 두 처형들을 위해.......

 

바리바리 짐을 꾸려 놓고 잠시 쉬고 있는 와이프에게 물었다.

 

이 사람아!

이렇게 여럿이 나눠 먹을 줄 알았더라면 더 뜯어 올것을........

나는 자네의 깊은 속도 모르고 단지 내가 힘이 약해서

많이 뜯어 오라는 줄 알았네

 

그때 와이프가 갑자기 내 등짝을 찰싹 내리쳤다.

 

서방님아힘은 그만하면 됐거든요!

이 것 혼자 다 먹고 한 여름날에 어디에다 힘을 쓸라고?

남자들은 하여간 몸에 좋다면 물불을 못 가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어깨가 우쭐해 졌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누구인가!

 

지금 내 힘이 그만하면 되었다.”

와이프가 스스로 인정을 해 주고 있지 않는가!

 

내 체면이 한 순간에 살아나는 순간이다.(ㅎ ㅎ ㅎ)

 

 

 

선별된 부추를 냉장고에 넣고 난 후 와이프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미래 아빠!

마트에 가서 막걸리 한 병 사와요

 

이 사람아!

나 혼술 끊은 것 알면서 웬 막걸리야!

 

저 봐!

아까 부추도 그러더니 막걸리도 혼자 마시려고 하네.

내가 못살아.

이봐요! 서방님! 자기 입만 입이에요?

나도 오늘 막걸리 한 잔 하고 싶다고요!

 

와이프의 비아냥 거림을 뒤로하고 점방으로 가는 길.

 

오랜만에 마시게 될 막걸리 생각에 촐랑거리며 뛰어가는

내 발걸음이 영락없이 초등학교 시절 봄 소풍을 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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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다 : [동사] 논밭에 잡풀이 많이 나다.

*뭇갈림 : [명사] 베어 놓은 볏단을 지주와 소작인이 절반씩 나누어 가지던 일.

또는 그렇게 나누어 가지기로 한 소작.

*난리 블루스 :  [명사] 요란하게 소란스러운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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