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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삽을 들고/웃음꽃

계란 이야기!

by 소담* 2020. 7. 11.

토요일 오전.

 

약수터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출출하던 차에 점방에 들러 막걸리 한 병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때마침 와이프가 식탁위에 찐 계란을 접시에 차려놓고 있었다.

 

목이 말라 대접에 막걸리를 가득 따르고 안주로 계란을 까는데

그 순간 문득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글 하나가 뇌리에 스쳐지나 갔다.

 

어느 사찰에서 유치원생 그림 그리기 사생대회가 펼쳐 졌다고 한다.

그 중에서 한 어린이가 그린 작품 하나가 큰 이목을 끌었는데…….

 

보통의 아이들은 탑을 그리고 연못에 있는 잉어를 그리고 사찰 주변의 풍경을

주로 그렸는데 특이 하게도 이 아이는 *불단 앞에 차려 놓은 떡과 과일들을

그렸다고 한다.

 

아이가 그린 그림 중에는 떡도 있고 바나나 배등 여러가지 과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중에서 유독 사과를 엄청 크게 그려 놓았다고.

 

얼마나 사과가 먹고 싶었으면 이렇게 크게 그렸을까!

 

심사위원들은 숙의 끝에 이 그림을 우수상으로 선정했다.

 

상을 수여하고 난 후 궁금했던 심사위원들이 아이에게 물었다.

 

사과를 왜 크게 그렸어요?”

 

맛있는 사과가 제일 먹고 싶었어요

 

천진난만한 아이의 순수함에 심사위원들의 입가에 웃음이 자자했다는

얘기가 글에 줄거리였다.

 

여기에서 나는 이 아이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았다.

비록 나는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이 어린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소싯적 어느 날.

 

잠자리에서 어머니의 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애고! 낼 모레면 제삿날인데…….

 

어머니의 한 숨소리는 제사장을 봐야 하는 돈 걱정이었지만 철없는

나는 제삿날이라는 소리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어릴 때는 왜 이렇게 제삿날이 좋았던지…….

 

제사를 모시는 날!

 

제사상에는 고기와 여러가지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지만 내 눈에는

그 중에서 계란이 제일 크게 눈에 들어왔다.

 

삶은 계란을 까서 중심에 칼을 V자로 꽂고 한 바퀴 연결해서

양쪽으로 쪼개면 계란이 마치 연꽃처럼 예쁘게 반으로 나뉘어 지는데

꽃이 된 계란을 목기에 올려놓고 123단 이렇게 단을 쌓아 올렸다

완성된 모습을 보면 예쁘기도 예뻤지만 어찌나 군침이 돌던지…….

 

이 계란을 먹겠다고 새벽닭이 울 때까지 잠을 안자고

제사를 모셨던 기억이 새롭다.

 

유치원생 어린이처럼 나도 그 시절 제사상을 그렸다면 아마도

계란을 가장 크게 그렸을 것 같다.

 

 

 

여기서 계란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계란은 날계란, 삶은 계란

구운 계란, 찐 계란 등 먹는 방법이 참 다양하다.

 

초등학교때 은사님 중에 조옥자 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은 학교에 출근을 할 때 꼭 점방에 들러 날계란을 먹었는데

계란을 잡고 양쪽에 구멍을 낸 다음 쪽 빨아먹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날계란을 먹을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 집 닭은 알을 낳을 때 꼭 *더그매에서 낳았다

이곳에는 외양간에 *깃으로 넣어 주기 위해 볏 집을 올려 놓았는데

용하게도 우리 닭은 여기에서 알을 낳았다.

더그매는 높아서 닭이 오르기에는 힘든 곳이었지만 외양간 앞에

받쳐 놓았던 리어카에 올라서 더그매로 훌쩍 날아올랐다.

 

어머니께서는 여기서 낳은 계란을 모아 두었다가 장날에 내다 팔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어떻게 된 일인지 어머니께서 닭이 알을 낳지 않았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리어카 위에 올라가 확인해 보니 전 날 외양간의 쇠똥을 치우고 새 깃을

넣어 주었던 짚더미가 사라지자 닭이 안쪽의 깊숙한 곳에서 알을 낳아 놓았다.

얼씨구 좋다!

나는 어머니 몰래 계란을 호주머니에 넣고 살며시 내려와서 아무도 없는

골목길 살구나무 아래서 양쪽에 구멍을 내고 쪽쪽 빨아먹었다

그 순간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선생님이 이 맛으로 계란을 드셨구나.

 

우리 닭은 닭장에 가두지 않고 키워서 동산에서 지네를 잡아먹고 자랐다.

요즘말로 얘기하면 유기농 닭이 낳은 계란이니 그 맛이 고소할 수 밖에…….

그때의 고소한 맛은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글로도 표현하기가 힘들다.

 

날계란은 뭐니뭐니 해도 비빔밥과 아주 잘 어울린다

날계란이 없는 비빔밥은 국물을 두 세 숟갈 넣고 비벼야 잘 비벼지지만

날계란이 있다면 굳이 국물을 따로 부을 필요가 없다.

날계란의 흰자와 노른자가 물 역할을 대신해서 잘 비벼질 뿐만 아니라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맛 또한 두 배로 고소해진다.

 

이렇게 날계란이 비빔밥과 잘 어울린다면

삶은 계란은 완행열차와 아주 잘 어울렸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나는 도둑기차를 많이 탔다

학교에 갈 때 남원역은 역무원이 많아서 도망갈 곳이 없었지만

내 고향 옹정역은 허허벌판에 역무원이 딱 한 명 뿐이어서

도망가기가 아주 쉬웠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올 때는 가끔씩 도둑기차를 탔다.

도둑기차를 타고 모아진 돈은 친구들과 함께 열차안에서

삶은 계란을 사서 먹었는데 그 맛이 어찌나 꿀맛이던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친구들 입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미래야!

희망아!

너희들이 좋아하는 찐계란과 닭똥집 다 볶았다. 어서 나와라!

 

와이프가 부르는 소리에 두 아이들이 식탁으로 모였다.

평소에 삶은 계란은 쳐다보지도 않던 아이들이 찐 계란만큼은

유독 반응이 엄청나게 좋다.

 

삶은 계란은 퍽퍽하고 맛이 단순해서 소금을 찍어 먹어야 하지만

찐 계란은 고소한 맛 때문에 소금도 필요 없다.

 

와이프가 계란을 까서 아이들에게 주는데 건네주는 족족 아이들이

척 잘도 받아먹는다

 

그때 마다 와이프의 입이 싱글벙글 미소가 가득한데.

 

싸모야!

얘들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좋아?

 

그걸 말이라고 해요

내 뱃속에서 열 달이나 키운 자식들인데……

 

그 순간 갑자기 질투심이 생겼다.

 

이 사람아!

서방님 입에 들어가는 음식도 얘들처럼 웃으면서 봐 주게나!

 

뭐라고요!

하루가 멀다 하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그 입을 보고 나보고 웃으라고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거에요?

내가 못살아!

얘들아! 내가 너희 아빠의 입에 술 들어 가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나오게 생겼니?

너희들도 입이 있으면 말을 한 번 해봐.

 

와이프의 다그치는 목소리에 슬쩍 내 눈치를 살피던 아이들이

고개를 돌리며 실실 웃는다.

 

애고!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괜히 건드렸다

 

애비 로서의 체통이 말이 아니다.

 

닭똥집을 좋아하는 아이들 덕분에 훌륭한 술 안주를 만났다

 

잠시 후 씩씩거리던 와이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 다시 아이들에게

찐 계란과 닭 근위 볶음을 번갈아 가며 권하는데 그때마다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와이프의 입이 살짝 귀에 걸렸다.

 

옛말에 이르기를!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가장 행복했다고 했던가!

 

와이프의 웃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니 아무리 봐도

내 와이프이기 전에 영락없는 얘들 엄마다.

 

 

====================================================

 

* 불단 : [불교] 부처의 상(像)을 모셔 놓은 단.

* 더그매 : (명사) 지붕 밑과 천장 사이의 빈 공간.

* 깃 : (명사)  외양간, 마구간, 닭의 둥우리 등에 깔아 주는 짚이나 마른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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