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가 잠시 쉬어가고 있다.
여름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자전거 라이딩을 나서는 길.
쉬엄쉬엄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그때
나팔꽃이 나를 불렀다.
오빠! 나 좀 보고 가.
그냥가면 섭섭하잖아.
얘야!
너 같이 예쁜 꽃을 어떻게 모른 척 하고 갈수 있겠니?
잠시 머물며 나팔꽃과 대화를 나누는데
그 사이 옆에 있던 메꽃이 질투를 했다
오빠!
나도 한 번 봐주라.
나팔꽃을 빼닮은 메꽃이 자기를 빼놓고 가면
얼마나 서운하게 생각할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러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질투하는 메꽃을 카메라에 담고 막 일어서는 그 순간!
곁에 있는 호박꽃이 소리치며 나를 붙잡았다.
오빠.
사람들이 내게 "호박꽃도 꽃이냐"고 묻더라.
누가 감히 그런 헛소리를 해.
너는 꽃중의 꽃이야
자신감을 가져야 돼.
호박꽃을 위로 해주고 다시 시작되는 길.
한참을 달리다 보니 바람결에 일렁이는 짙은 초록색의
어린 벼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내가 김해평야를 자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다보다도 더 넓은 가슴을 가진 김해평야!
이런 풍경에 어찌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보고 또 보고 그렇게 풍경에 푹 빠져 있는 그때
별안간 낮선 풍경 하나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 동안 드넓은 김해평야는 어떻게 농약을 칠까 궁금했는데
오늘에서야 그 비밀이 풀렸다.
때마침 논두렁 길에서 농약을 주입하고 있는 드론을 만났다..
마침내 드론이 하늘에 떴다.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했던가.
요즘은 농약도 드론으로 살포를 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ㅎㅎㅎ
이 좋은 풍경을 앞에 두고 옛 추억이 떠올랐다.
내가 중학교 시절만 해도 농약을 치려면
빨간 큰 고무 통에 약을 가득 채우고
긴 줄이 매달린 펌프식 손잡이를 앞뒤로
밀고 당기면서 저어야 했는데.
농약을 치던 그 날.
애고!
나는 *죽을 둥 살 둥 펌프를 힘껏 젓고 있는데
큰 형님은 내 속도 모르고 농약이 약하게
나온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이번에는 또 줄이 꼬였다고 난리를 치고.
여기저기로 논바닥을 뛰어다녔던 그날!
나는 온 몸이 괴로웠다.
그러나저러나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농약도 드론으로 치다니 ㅎㅎㅎ
낮달맞이 꽃이 오렌지 철교와 풍경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멋진 풍경에 사로잡혀 있는 그때 참깨 꽃이 나를 불렀다
오빠!
나 좀 봐주라!
아까 본 꽃들은 전부 가짜다.
내가 진짜 꽂이야.
참깨 꽃이 자기가 진짜 꽃이라고 나를 향해 손짓을 하는데.
그 순간 참깨 꽃 속에서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떠올랐다.
땅거미가 질 무렵 마당에 *갑바를 깔고 방망이로
참깨를 털던 어머니께서 혼잣말을 하셨다
얘야!
우리 집에 깨가 쏟아진다.
넋두리를 하시던 어머님이 자신의 말에 놀랐는지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씩 헛웃음을 지으셨다.
서른여덟에 홀로되신 어머니에게 과연
깨가 쏟아지던 시절이 있었을까! 마는
글쎄.......
그때의 어머님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어머님을 추억하며 돌아서는 길에 참나리 꽃을 만났다.
고향집 장독대 옆에 해마다 피었던 참나리 꽃!
꽃멍을 때리는 그 순간 눈앞에 고향집이 자꾸 아른거렸다.
때마침 나리꽃을 찾아 온 호랑나비가 풍경에 운치를 더해주었다.
해반천 외동 배수펌프장에서 연꽃을 만났다.
연꽃 세상에 있다 보니 마치 내가 부처라도 된 듯
그 순간 무척이나 마음이 평화로웠다.
백련꽃이 청아한 자태로 순수함을 뽐내는가 싶더니
뒤질세라 홍련꽃도 우아한 자태로 세련미를 뽐내고 있었다.
'바늘 가는 데 실 가고, 바람 가는 데 구름간다' 고 했던가.
연꽃 주변에는 늘 부처꽃이 따라 다녔다.
알고 보니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처꽃도 연꽃처럼 연못이나 늪지대 같은
축축한 곳을 좋아하는 습생식물이라고 한다.
연꽃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펌프장 앞 산책로에서 예쁜 기생들을 만났다
수많은 기생들이 양쪽에서 꽃담을 이루며 나를 반기는데
이 순간만큼은 내가 사또가 된 기분이었다.
"기생초꽃"의 꽃말은
'다정다감한 그대의 마음' 이라고 하는데 내 마음처럼
내 인생길에 늘 이런 꽃길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인생길을 이르러
만경연파수첩산 (萬傾煙波數疊山)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고
산을 넘으면 또 산이라고 했거늘.
부질없는 욕심에 갈 길은 멀기만 한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 지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집까지는 자전거로 한 시간을 달려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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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을 둥 살 둥 : (부사) 있는 힘을 다하여 마구 덤비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 갑바 : (외래어) 포르투갈어(Capa)- 씌우다, 덮다, 덮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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