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모처럼 거실에 앉아 TV 삼매경에 푹 빠져있는데 와이프가 안방에서 나를 불렀다.
미래 아빠!
가계부를 정리하다 보니까 통장에 돈이 제법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잔고 좀 확인해 봐요!
와이프의 부탁에 급하게 은행에 잔고를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약간의 돈이 쌓여 있었다.
주저 없이 대출금의 일부를 갚고 나니 다시 통장이 바닥을 드러냈다.
텅 빈 통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답답한 나머지
도대체 남은 빚이 얼마인지 언제까지 갚아야 하는지
확인을 해 보기 위해서 가계부를 펼쳐 보았다
지금의 내 나이 예순 둘.
마흔 살에 가게와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 시작된 빚이
계산을 해 보니 지금처럼 갚아 간다면.......
그때는 내 나이 일흔.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까닭 모르게 한 숨이 절로 나왔다.
휴우!
한 숨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베란다에서 빨래를 걷어 오던 와이프가 화들짝 놀라며 말을 건네 오는데.
땅 꺼지겠네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한 숨을 쉬고 그래요?
응! 가계부를 보니 내가 일흔 살 까지 빚을 갚아야 할 것 같네.
이러다 평생을 빚만 갚다가 죽게 생겼어.
그 순간! 와이프가 불쑥 내뱉는 한마디.
뭘 그리 걱정을 하고 그러세요!
인생 100세 시대라는데 빚을 갚고 나면 남은 삼십년은 편안하게 살다 가겠구먼!…….
와이프의 얼토당토않은 소리에 나도 모르게 은근히 짜증이 났다.
시끄러워 이 사람아!
일흔 살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게 좋은 일이야!
그때 뾰로통해진 와이프가 하는 말!
아따! 서방님 무서워서 농담도 못하겠네!
투덜거리는 와이프를 앞에 두고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집안 정리를 마친 와이프가 갑자기 내 손을 꼭 잡더니
바깥에 산책을 나가자고 부추겼다.
와이프의 손에 이끌려 대청천의 둘레길 에 나서는 길.
집을 나서자 우리들의 마음을 달래 주기라도 하려는 듯
때마침 상큼한 한줄기 바람이 휙 코끝을 스치며 자나갔다.
한참을 걷다가 우리는 잠시 벤치에 앉아서 쉬어 가기로 했다.
자리에 앉는 순간.
벤치 아래에 누군가가 버리고 간 로또 두 장과 담배꽁초가 눈에 들어왔다
당첨 된 로또라면 누가 빼앗아 갈세라! 훔쳐 갈세라!
애지중지 품안에 갖고 있을 텐데 떨어진 로또는 단물
다 빨아먹고 난 껌처럼 이렇게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그때. 로또를 바라보고 있던 와이프가 나를 부르는데.
미래아빠! 우리도 로또 한 번 사볼까?
이 사람아. 내 복(福)에 되겠어!
부정적인 내가 못마땅했는지 와이프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서방님아! 복중에 최고가 "처복"이라는 것도 몰라요?
예쁘고 살림 잘하고 이런 나를 만난 것도 큰 복인데.......
자화자찬을 하는 와이프를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어요.
응. 그냥 좀 거시기해서.......
피식 또다시 웃음이 터지자 와이프의 손바닥이 갑자기 하늘위로 치 솟았다.
금세라도 한 대 내려칠 것 같은 분위기에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을 치는데.
웃으며 도망가는 서방님과 한 대 때려주겠다고 쫒아오는 와이프.
하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곧 멈추었는데 이때를 놓칠세라
헐레벌떡 뒤따라오던 와이프가 기어코 내 등짝을 세차게 내리쳤다.
살짝 아팠던 것도 잠시.
우리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껄껄껄 웃기에 바빴다.
싸모야! 우리 로또 사러 갈까.
좋지!
좋다고 맞장구치는 와이프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싸모야!
아까 자기가 한 말 중에 복중에 최고가 '처복'이라고 했으니까
이번에 로또는 자네 손으로 직접 사는 게 어때!
그 순간!
안돼요! 하더니 와이프가 잡고 있던 내 손을 휙 뿌리쳤다.
안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 때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와이프가 하는 말!
혹시 당첨이 안되면 처복도 별 것 아니라고 자기가 우길 것 같아서 (ㅎㅎㅎㅎㅎㅎ........)
그 순간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와이프 참 똑똑하다
좋아! 오늘 로또는 공평하게 자네도 한 장, 나도 한 장 이렇게 따로 사지.
응. 좋아!
마음에 들었다는 듯 마주잡은 와이프의 손에 힘이 불끈 느껴졌다
우리는 지금! 로또 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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