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약을 타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
병원에 도착하자 카운터 앞에 예닐곱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앞에서 칠십대로 보이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면도도 염색도 안 한지가 꾀 오래 되었는지 덥수룩한 수염에 앞코가 해진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한 눈에 봐도 제법 나이가 들어 보였다.
잠시 후 순서대로 카운터에 놓인 에이포 용지에 성함과 생년월일을 적는데
앞에 적어 놓은 아저씨의 생년월일에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1963년 10월 9일생.
나보다 한 살 작은 아저씨가 왜 이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는지?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시선이 자꾸만 아저씨에게 쏠렸다.
역지사지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남들은 나를 몇 살로 볼까!"
그 순간 새삼 내 모습이 궁금해졌다.
처방전을 들고 병원을 나서는 길.
승강기에 타는 순간 거울속에 내 얼굴이 나타났다.
두 달 동안 파마를 안 했더니 머리가 다 풀려 있고 염색도 안 한지가
오래되어 흰머리가 양 옆으로 하얗게 드러나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전에 만났던 아저씨와 영락없이 닮아 있었는데.
이런 내 모습이 보기 싫어서 작심을 하고 단골 미용실에 들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미용실 앞에 도착해 보니 셔터가 내려져 있고 가게가 텅 비어 있다.
40대 초반의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아무래도 손님이 없어서
문을 닫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할 수 없이 다른 미용실을 찾고 있는 그때 때마침 새 미용실이 한 눈에 띄었다.
미용실 안을 살펴보니 주인과 종업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살며시 문을 열고 비용을 물어 보았다.
파마하고 염색하고 커트를 하려고 하는데 비용이 어떻게 됩니까?
원장으로 보이는 주인이 "칠 만원인데요” 라고 하는데.
그 순간 내 머릿속이 셈법으로 복잡 해졌다.
단골집이 문을 닫기 전에는 육 만 원에 했는데 칠 만원이라니!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연필이라도 깎아 야지!" 라는
심정으로 곧 바로 흥정에 들어갔다
"좀만 깎아주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원장이 “육만 오천 원에 해 드릴게요”
흥정이 끝나고 주저없이 미용실 안으로 들어서는데
새 미용실 답게 향긋한 인테리어 냄새가 코끝을 물씬 풍겼다.
이내 파마가 끝나고 머리위로 하얀 비닐캡이 씌워졌다.
잠시 텔레비전을 보다가 눈을 감고 쉬는 사이.
아가씨가 갑자기 떡을 들고 나타났다.
아저씨! 떡 좀 드세요
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정중하게 사양을 하고
다시 눈을 붙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또 귤을 들고 나타났다.
아저씨! 귤 좀 드세요
그 순간 입장이 난처해 졌다.
애고!
제가 신 것을 싫어해서 죄송합니다.
먹은 거나 진배없네요.
두 번이나 거절을 하고 나니 고개를 갸우뚱 거리던 아가씨가
갑자기 뒤돌아서더니 나를 불렀다.
아저씨! 혹시 술 좋아하시죠?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가씨가 어떻게 내가 술을 좋아하는지 알았어요?
내 물음에 호호호 웃던 그녀가 하는 말이 재미있다.
우리 아빠가요. 술을 엄청 좋아시하는데 아저씨처럼 떡이나 과자
신 과일은 전혀 입에 대지 않거든요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니!
신기한 나머지 아가씨의 아빠 나이가 궁금 해 졌다.
아가씨! 아빠 나이가 어떻게 돼요?
올 해 ‘예순 둘’입니다.
아가씨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그때.
아가씨가 느닷없이 내 나이를 물었다.
아저씨!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그 순간 아가씨의 눈에 나는 지금 몇 살로 보일까?
대답대신 아가씨에게 되물었다.
아가씨는 내가 몇 살로 보여요?
그런데 내 물음에 아가씨가 넌지시 불만을 드러냈다.
어른들은 이상하더라!
나이를 물어보면 대답을 안하고 꼭 자기가 몇 살로 보이냐고 묻더라.
그때 원장이 말을 가로채고 나섰다.
너도 나이 먹어봐라!
나중에 나이들면 너도 그렇게 될 걸.
원장의 말에 당황한 듯 멋쩍어 하는 아가씨에게 나는 주제넘게
또 다시 내 나이를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가씨가 불쑥 꺼내는 말!
오십 대 중반 아니세요?
그 순간 또 원장이 말을 가로챘다.
에이. 그것은 아니고 내가 보기에는 오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아무래도 사십대 초반의 원장이 나잇값을 하는 듯 내 나이와 근접한 숫자를 댔다.
이쯤에서 궁금해하는 두 사람을 위해 내 나이를 전격 공개 했다.
아가씨 아빠하고 나하고 나이가 똑같네요!
그러자 아가씨와 원장이 소스라치며 "정말이에요!" 라고 물었다.
두 사람 모두 생각보다 내가 젊어 보인다고 놀라는데
그 순간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잠시 후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 앞에 섰다.
원장이 개업 기념이라고 하면서 에센스를 선물로 주는데
나이도 젊게 봐주고 덤으로 선물까지 얻고나니 갑자기 통이 커졌다
'원장님! 카드 그냥 칠 만원 끊으세요'
그 순간 원장님의 입이 귀에 걸렸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서는 길.
내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서 일까!
상큼한 봄바람에 나도 모르게 정훈희의 '꽃길' 노래가
입안에서 절로 흘러 나왔다.
진달래 피고 새가 울면은~~~
두고 두고 그리운 사람~~~
잊지 못해서 찾아오는 길~~~
그리워서 찾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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