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누워있는 아빠의 배위에 올라앉았습니다.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아빠는 아랫도리에 있는 아들의
고추(?)를 따서 입가에 대고 후루룩~~~요란한 소리와 함께
맛있게 먹는 시늉을 짓습니다.
아이는 이런 아빠의 표정이 신이 나는지 싱글벙글
어쩔 줄을 모릅니다.
다시 아빠가 아들에게 조릅니다.
아가! 고추 좀 따 줄래!
신이 난 아들은 고추를 따서 계속해서 아빠의 입에 대줍니다.
한 번,두 번,세 번
후루룩~~~
후루룩~~
후루룩~
그럴 때 마다 아이의 웃음이 자지러집니다.
그렇게 아이와 아빠는 한참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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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풍경은 소담이 세 살 때 아버지와의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입니다
세 살배기 아들인 제가 무슨 천재도 아니고 세 살 때의 기억을
어찌 기억하고 있겠습니까마는 여기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나이 세 살 때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중학교 다니던 사춘기 시절 어느 겨울날.
어머니! “혹시 아버지 하고 저하고 재미있는 어떤 기억들이 있나요!”
신기하게도 어머니는 마치 내 물음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주저 없이 그때의 이야기를 죽 늘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위에 그려놓은 풍경은 어머니께서 들려준 이야기를 토대로
내가 상상으로 그린 아름다운 풍경이면서 슬픈 풍경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슬픈 생각이 참 많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도 졸업식 날에도 가을 운동회 날에도 아버지의
자리는 늘 비어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시절 그때만 해도 어렸던 탓인지 아버지의
빈자리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안 계시는 것뿐이라고.
그러던 내가 거리를 배회를 하며 방황하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아버지의 빈자리가 커져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누구나 다 그랬겠지만 나 역시 사춘기 때 참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학교를 관두고 도망을 가버릴까!
왜! 무엇 때문에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공부를 못하면 왜 두드려 맞아야 하는지!
정말이지 그때는 사는 것 자체가 짜증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고 기대어
보고 싶은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도 가족도 그 누구에게도 나는 내 가슴을 쉽게
보여 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계셨지만 젊은 나이에 혼자된 탓인지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무언가에 쫓기듯 늘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뇌신”이라는 약을 보약이라도 되는 듯 매일같이 드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도 내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아버지!
혹시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군대를 갈 때의 일입니다.눈물을 글썽이며 내 뒤를 따라 나서는
어머니가 왜 이렇게 슬프게 보였는지.
신작로까지 따라 오겠다던 어머니를 극구 말리며
집에 들어가시라고 수도 없이 일렀건만 어머니는
아직도 동구 밖 도랑가에 서서 내가 타고 가는 버스를 보기위해
신작로를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옆에 아버지가 있었더라면.
군에 가는 내 모습도 이렇게 슬프지 않았을 텐데.
결혼을 하기위해 분가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머니는 쌀 두 가마와 함께 참깨, 들깨 그리고 당장 먹고
살아야 할 여러 가지 부엌 살림살이들을 준비해 놓고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우리 막둥이 잘 살아야 할 텐데…….”
어머니의 눈물이 한참동안 이어졌습니다.
친구 봉고차에 짐을 싣고 떠나는데 뒤를 돌아보니
이날도 어머니는 내가 탄 차가 사라질 때 까지 내 뒷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때도 어머니 곁에 아버지가 있었다면 슬픔은 작았을텐데.
이렇듯 아버지는 내게 있어서 늘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아쉬움.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향에 가면 안방 벽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아버지를 사진속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늘 사진 속에서나 보았던 우리아버지.
이런 아버지께서 어젯밤 꿈속에서 나타나셨습니다.
길을 걷는데 도로 건너편에서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런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너무나 허망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지나가 버리고 나는 나대로 아무 말 없이
지나쳐 버렸습니다.
서로가 남을 쳐다보듯 그렇게 지나가면서 꿈에서 깨었습니다.
참 이상한 꿈이었습니다.
꿈속에서라도 아버지를 만나면 엉엉 울어보기도 싶고
가슴에 안겨 보기도 싶고 손을 잡고 뛰어보고도 싶었는데
어찌해서 아버지와 아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헤어져야 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분하고 슬펐습니다.
애비의 얼굴을 모르는 놈은 꿈속에서 조차도 이렇게
사진속의 모습처럼 표정 없이 스쳐가야 하는건지
갑자기 눈물이 주르룩 흘러내렸습니다.
그 사이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부지런 하던 와이프의 손놀림 덕분에 아침 식탁이 풍성합니다.
며칠전 정월 대보름날 와이프가 사다 놓았던
조기 두 마리가 노릇노릇 잘 구워진 채 식탁에 놓였있습니다.
젓가락을 들고 껍질을 벗겨내니 반짝반짝 윤이 나는 조깃살이
참 탐스럽니다. 절반을 떼어서 딸아이에게 남은 절반은
아들 밥그릇에 얹어주었습니다
맛있게 먹는 두 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흐뭇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간밤 꿈속에 나타난 아버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세 살배기 막둥이가 고추를 따주고 후루룩 거리는 소리에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나를 바라보던 그때 아버지의 표정이
아마도 지금의 내가 두 아이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것처럼
행복 했을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출근길에 나서는 길.
55년만의 한파라고 떠들썩하던 날씨만큼이나 코끝이 시리웠지만
이런 한파도 내 마음까지 시리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뜻한 봄날 싹을 틔우는 초목들처럼 우리 딸 미래와 아들 희망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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