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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밭에 앉아/모정의 세월

박꽃과 어머니

by 소담* 2013. 6. 29.

 

한여름 날...

 

해가 서산을 넘을 무렵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칼국수에 배를 채운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때마침 처마 밑에 살찐 왕거미 한 마리가

허공을 돌며 빙글빙글 집을 짓고 있었는데

순간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무얼 얼마나 먹었으면 이렇게 배가 빵빵할까?

 

주저 없이 막대기를 가지고 왕거미의 배를 살짝 건드려 보았다

깜짝 놀란 거미가 줄을 죽 늘어뜨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거미는 죽은 척 하면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비웃기라도 하는 듯 잽싸게

기어서 도망을 갔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도망가는 거미를 

잡고 또 잡으며 장난삼아 놀았다

그러는 사이 밤은 어느새 초저녁을 넘어서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나를 불렀다

 

아가!

마실 가려는데 따라 갈래?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마실길을 따라 나섰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어머니께서 자주 가는 단골집에는 두 미망인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지아비 한 사람을 모시고 같이 살았지만 어느 날 불행하게도

젊은 나이에 남편과 일찍 사별을 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이 집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잠은 오고 어머니에게 빨리 집에 가자고 칭얼 거렸다.

 

어머니와 함게 손을 잡고 돌아 오는 길.

 

둥그런 달이 전봇대에 걸쳐 있고

 

초가지붕 위로 달빛에 어우러진 하얀 박꽃들이

여기저기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박꽃으로 가까이 다가선 어머니는 한참을 바라보시더니

이상한 말을 남기셨다

 

"꽃이 참 한심스럽게 피었다"

 

나는 달빛에 비친 꽃이 예쁘기만 한데

어머니는 박꽃이 참 한심스럽다고 했다

 

예쁜 꽃이 왜 한심스러울까?

 

어머니의 나이 서른여덟에 내 나이 세살 때

아버지가 팔 남매를 남겨두고 하늘나라에 가셨다

 

달은 휘영청 밝은데 막둥이 아들과 돌아오는 길에 만난 박꽃은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사치스러울 만큼

한심스럽게 비쳐진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오자 금세 이부자리가 펼쳐졌다.

 

얼마 후!

늘 그랬던 것 처럼  어머니의 긴 한 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머니의 한 숨 소리를 자장가 삼아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

.

.

.

.

 

석양이 물드는 일요일 오후.

 

대청천 뚝길을 걷다가 허물어진 토담 위로 하얗게 핀 박꽃을 만났다.

박꽃을 보자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추어지는데.......

 

그 순간 그때 그 시절!

 

어머님이 내 쉬던 한 숨처럼 나 역시 깊은 한 숨이

절로 나오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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