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밭에 앉아/모정의 세월

아! 어머님

by 소담* 2016. 1. 22.

소싯적 어느 날! 어머님에 손을 잡고 밤 마실 길에 나섰다

 

어머님이 가는 곳은 단골집처럼 늘 가는 봉산댁이라는 곳이었는데

이 집에는 아이를 갖지 못했던 첫 아주머니와 후처로 들어와서

아이를 가졌던 둘째 아주머니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한 남편을 모시고

살았으나불행하게도 젊은 나이에 남편과 일찍 사별을 하고 말았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은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말인데

 

내 나이 세 살 때 그러니까 어머니 나이 서른여덟에 팔남매를 남겨두고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셨다.

 

홀로된 사람의 마음은 홀로된 사람만이 안다고 했던가!

 

젊은 나이에 홀로 되신 어머니는 매일 밤 이 집에서 두 분의 미망인과  

오랜 시간을 같이 지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같이 놀아 줄 친구도 없고 잠은 쏟아지고 나는 집에 가자고 어머니를 보채기 시작했다

 

다시 어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골목길에는 수많은 별들이 수를 놓은 듯 총총히 빛나고.......

 

집에 도착하자 마자 어머니는 칭얼대는 나를 위해 금세 이부자리를 펼쳤다.

어머님의 품에 안긴 것도 잠시!  여느때 처럼 어머니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의 한 숨소리가 자장가라도 되는 듯 나는 이내 평온하게 깊은 잠에 빠져 들었는데.......

외롭고 긴 밤을 한숨으로 보내시던 우리 어머니!

 

그 때 그 시절  어머님의 한숨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여 잊혀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며 팔남매를 위해 어려운 살림에도

악착같이 우리를 키워주신 어머니.......

오죽하면 늘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을까.

뇌신이라는 하얀 가루약이 있다. 어머님은 머리가 아플 때  매일같이 이 약을

드셔야 했을 만큼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오셨다.

 

 

한 달 전.

 

전주에서 친구들의 모임이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 곧 다가 올 동짓달 초여드렛날의 어머니 생신을 미리 축하해

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사 드리기 위해서 와이프와 함께  고향 집으로 향했다

때마침 누이들도도 집에 와 있었는데 집에 도착한 순간 너무나 깜짝 놀랐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다

 

밥도 못 드실 만큼........

 

이게 웬 일인가 평소에 전화를 하면 무릎이 아파서 못 살겠다라고 했지만

밥을 못 드실 만큼 속이 아프다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던 터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누워계시는 어머님의 얼굴이 두 달 전 보았을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런 그때가 언제라고 이제는 밥도 못 드시고 겨우 요플레 몇 개만 드신다고 하니

이렇게 될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이런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전주에서 모임을 갖는데 마음은 온통 어머니에게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부랴부랴 다시 남원으로 향했다

어머니와 하룻밤을 자고 형님들과 의논 끝에 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평소에  입버릇 처럼 죽어도 끝까지 집에서 죽겠다고 늘 고집을 부리시던 어머니.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제는 자신 스스로 요양병원으로 가시겠다고 했다

 

얼마나 힘들고 아프셨으면.......

 

그렇게 어머니는 그토록 떠나기 싫어했던 고향집을 뒤로 하고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어머님을 요양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집이 있는 김해로 돌아오던 날!

하염없는 눈물이 왜 이렇게 앞을 가리는지.......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셔놓고 처음 맞이하는 토요일.

 

다시 남원으로 향했다. 마트에 들러 요플레를 사는데

어머니와 같은 병동에 있는 할머니들이 떠올랐다

어머니만 드릴 수도 없고 서 너 통을 더 사서 병원을 찾는데

그때까지 어머니는 약간의 미음만 드실 뿐 정작 사간 요플레는

한 개도 제대로 못 드셨다.

곁에 있는 할머니들은 건네주는 대로 쪽쪽 잘 도 먹는데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못 드시는 어머니 때문에 무척이나 속이 아팠다

 

며칠 후 어머니가 전북대 병원에 들러 내시경 검사를 했단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생업을 포기할 수 없어

형님에게 전화로만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힘들다는 말을 듣고 다시 남원 요양병원으로 돌아오셨다고.

 

대학병원에 다녀오신 뒤로 몸은 나날이 더 야위어 가셨다

음식도 제대로 못 드신 분이 내시경검사에 피까지 뽑아대면서

아무래도 체력이 많이 소모되신 것이 분명했다.

금식을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와 함께 이제는 아무것도

못 드시는 어머니께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그저 배를 쓰다듬어 주는 일이 전부였다

고통스럽게 호흡을 하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소싯적 어머니 앞에서 호강시켜주겠다고 좋아했던 홍어도 많이 사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나였건만........

 

병상에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그때 약속했던 홍어가 왜 이제 와서야

생각이 나는지 뒤늦은 후회에 자꾸만 목이 메어왔다

 

불효도 이런 불효가 또 있을까!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니는 마지막 그 순간 까지도 늘 나를 자랑하기에 바빴다.

뭐 하나 잘 해 드린 것도 없는데 병상에 누워서 조차도 곁에 있는 할머니들에게

내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십대 중반인 나를 아가라 부르며 늘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님.......

 

서른 네 살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갈 때까지 나를 위해 온갖 뒷바라지를 해 주시던 어머니.

 

이런 어머니의 사랑을 그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받고 자란 내가

정작 어머니를 위해서 해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불효자식에게 더 줄 사랑이 무엇이 남아있다고 

병상에서 그토록  나를 찾고 또 찾았는지..........

 

토요일 마다 어머니를 뵙기 위해 고향을 다녀왔다

 

114일 목요일.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전화를 받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그토록 마음 아파했던

막둥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돌아가시다니 너무나 억울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흐느껴 울고 또 울었다

 

입관식 날 마지막으로 어머님을 뵈었다

화장을 하고 고운 수의를 입으신 어머니......

그런데  그토록 아파하던 배는 뭐 하나 드시지도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아팠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였다.

 

얼마나 아프셨기에

얼마나 아프셨기에.......

 

나는 하얀 국화 꽃잎을 어머니 배위에 뿌리고 또 뿌리며 꺼이꺼이 목을 놓아 울었다

 

그렇게 어머님은 향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한 평생을 늘 올 곧게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

돌아가실 때 까지 남아있는 자식들을 위해 아쉬워 하지 말라고

꼭 달포를 고생하시다가 먼 길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님을 승화원에 모셔놓고 나오는 날

내 마음은 뻥 뚫려 시린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 겨울 날. 마치 봄날 처럼 따스한 햇빛이 눈부시게 푸르렀다.

 

오늘은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십 일째가 되는 날이다

문득 혼자 있게 되는 순간이면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열고 어머니의 사진을

보는 것이 요즘 나의 일과가 되어 버렸다

볼 때마다 슬픈 생각에 눈물을 짓게 되고. 그래서 오늘은 어머니의 사진을

모두 지우기로 했다. 지우기 전에 먼저 어머님에게 이렇게 전해 드렸다

 

어머님!

제가 어머님의 사진과 동영상을 지운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어머니의 사진과 동영상은 제 컴퓨터에 담아 놓았으니 제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답니다. 다만 핸드폰 속에 실어진 사진은 이제 지우렵니다.

볼 때마다 잊지 못해 흐는 끼는 저나 하늘에서 울고 있는 저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님이나 마음 아픈 것은 똑같을 테니까요.

 

어머님의 슬픈 얼굴은 모두 잊겠습니다. 이제는 명절날 동구 밖 도랑가에서

저를 기다리며 환하게 미소 짓는 어머님에 모습만 그리겠습니다.

 

그 동안 어머님의 아들이어서 자랑스러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더보기

 

글을 다 써 놓고 평소에어머님이 즐겨 부르시던 노래

고복수의 짝사랑을 듣고 있다

노래 가사 속에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라는 내용이 있다

 

지나친 그 세월이 어떠했기에 어머님은 노래를 끝내고

꼭 눈물을 흘리셨을까!

양손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훔쳐내시던

어머님의 그때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게 남아있다

  

어머님이 그 토록 떠나기 싫어했던  그 날의 고향집 풍경이다

명절날이면 나를 위해 냉장고에 막걸리 두 병을 꼭 사다 놓으셨다.

                          내가 내어난 탯자리.   

 부지런한 어머니는 병원에 가는날 까지 모든 것이 빛이 났다

 팔 남매의 안녕을 빌고 또 빌었던 정한수가 가운데 놓여있다

 밥을 짓기 전 어머님은 꼭 정한수 물부터 새물로 바꾸었다.

장독대가 텅 비어있다 . 지인들이 하나 둘 가져가고 빈 자리만...

 봄이 되면 빨깐 나리꽃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해 주었던 화단이다.

 

텃밭이 텅 비어있다.남아있는 파가 텃밭에 흔적을 알려 주는데......

어머니는 이곳에 배추를 심었다.

늦가을이 되면 김장을 해서 보내주셨는데.......

이제는 그 맛도 찾을 길이 없다.

 

"꽃삽을 들고"의 실린 모든 글은 "이용허락표시(ccl)"가 걸려 있습니다.

 

다음 블로그 "꽃삽을 들고"의 실린 모든 글은 끝머리 오른쪽 하단에

위와 같은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이 표식은 이용허락표시(ccl)가 담겨있으니 주의 하라는 내용입니다.

제 블로그의 CCL은 몇 가지 이용방법 및 조건을 부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원래의 저작자를 반드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상업적 이용을 절대 하지마라는 것이며

세 번째 절대 글을 변경하지 마라는 내용입니다

"다음" 블로그 "꽃삽을 들고"의 실린 모든 글은 위와 같이 "이용허락표시(ccl)"가

걸려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일부사진 제외)

이와 같은 일이 지켜지지 않으면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 꽃밭에 앉아 > 모정의 세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이 미어지는데.......  (0) 2016.12.03
사모곡(思母曲)  (0) 2016.09.14
가래떡  (0) 2015.02.10
박꽃과 어머니  (0) 2013.06.29
삶의 여정(餘情)  (0) 2013.04.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