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詩 : 천상병(千祥炳)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 사면
한 홉 자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 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인 것이다.
위 글은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리던
천상병 시인이 지은 "막걸리"라는 시다
시를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막걸리를 좋아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또 다른 그의 시 「귀천」을 보면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시인 천상병.
그는 하늘로 돌아가는 歸天길에 이 세상 삶을 소풍으로
노래하고 있다.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이 세상이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했던 그가 산 이 세상은 어떤 삶이었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남길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가 가장 좋아했다는 막걸리는 그의 소풍 길에
또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퇴근 길! 25시 마트에 들렀다
나는 막걸리를 살 때 큰 슈퍼에 가지 않는다.
달랑 막걸리 두 병 사겠다고 줄 서는 것 자체가
남세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아깝다.
비록 25시 마트가 몇 백 원 비싸긴 하지만 시간도 절약되고
공짜로 비닐봉지에 담아주기 까지 하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가 따로 없다.
막걸리 두 병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들놈이 막걸리를 보더니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못 본 척 눈을 돌렸다
아들과 술을 줄여 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이 이제 겨우 몇 날
되었다고. 가끔은 이렇게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때 힘들어 하는 아빠의 표정을 이해라도 해 주는 듯
애써 모른 척 해 주는 아들 녀석이 그저 고맙다
요즘 들어 주변 사람들이 다들 힘들다고 한다.
“다들 힘들다”를 거꾸로 읽어보면 “다들 힘들다”가 된다.
부자는 부자대로 힘들다고 하고 빈자는 빈자 대로
힘들다고 하는 이 세상!
그렇다면 부자(富者)와 빈자(貧者)중 누가더 힘들까?
궁금해서 곁에 있는 와이프에게 물어 보았다.
그런데 뜻밖의 답변이 나를 놀라게 했는데.
제발 부자여서 힘들어 봤으면 좋겠다" 라고.......
그럴 때 마다 나는 이렇게 얘기를 한다.
싸모야! 내 팔자를 보니 부자되기에는 이미 그른 것 같고
지금처럼 빈자로 살면서 힘든 것이 더 낫겠다고.
이런 소리를 할때 마다 와이프는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본다.
그러나 저러나 막걸리를 마시고 나니 기분이 참! 좋다
혹여! 천상병 시인이 느꼈던 기분이 이런 거라면
나 역시도 이 세상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디 이뿐이랴! 오늘따라 세상이 참 만만하게 보인다.
모두 다 힘들다고 하는 이 세상!
술이나 한 잔 마실 때나 세상 만만하게 볼까
언제 또 만만하게 보겠는가!
술김에 하는 말인데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 있으면
다 나와 보라고 그래!
술이 좋긴 좋은가 보다
소담 ←------이 친구가 막걸리 한 잔 걸치더니
지금 알딸딸한 모양입니다
소담아!
정신 차리거라. 네가 보는 만만한 세상도
술이 깨고 나면 한낱 一場酒夢(일장주몽)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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