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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들의 밀어/그때 그시절

무밥과 무생채

by 소담* 2024. 11. 3.

소싯적에 새벽녁이면 깊은 잠을 깨우는 소리가 있었다.

 

썩썩썩 무를 써는 소리.

 

앞집에도, 옆집에도, 뒷집에도 썩, 썩, 썩 

 

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새벽녘.

어머니는  늘 새벽같이 일어나서 무를 썰었다.

 

무써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며 어머니의

손길을 바라보았다.

 

동그랗게 썰어진 무가 가지런히 놓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무채로 변하기 시작했다.  무채는 다시 옆으로 돌려서

써는데 이때 밥알처럼 크기가 작게 변했다.  

 

얘야, 무줄까!!!

 

어머니는 파란 무 머리를 동강내어 먹기좋게 한 조각을

내 입에 넣어 주셨다.

 

아삭 ................. 이불 밑에서 맛보는 무의 향기! 

약간 매운 맛도 풍기면서 어찌나 시원하던지.

 

마침내 햇살이 밝아지며 아침 밥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무밥은 강된장에 비며 먹어야  제맛인데 허겁지겁

먹다보면 밥이 코로 넘어갔는지 목으로 넘어갔는지

금세 밥 한 공기가 뚝딱 사라졌다. 

 

 

아침을 먹고 햇살이 퍼지면 밖으로 나섰다.

 

하루종일 자치기를 하고 얼음을 지치다보면 동짓달

짧은 해는 금세 서산을 넘었다

 

저녁을 먹고면 누이들과 함께 화투놀이 했다.

긴긴 겨울 밤! 어느 순간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이때 누이들이 눈밭에 묻어 놓은 고구마를 챙겨왔는데.......

 

꽁꽁 언 고구마를 깎아서 입에 넣으면 어찌나

시원하고 맛있던지 요즘에 아이스크림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그 시절 간식으로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잠자리에 들 무렵!

뜨거운 아랫목을 밀쳐내고 윗목으로 오르다 보면

어김없이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자리끼로 놓아둔 무밥 숭늉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그때의 무밥의 숭늉맛을 잊지 못한다.

얼마나 구수한지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이 맛을 모른다.

무 하면 빠트릴 수 없는 것이또 하나 있다.

바로 무생채다.

 

어머니는 무생채를 만들 때 무청도 몇개씩 곁들였다.

멸치젓을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그 맛이 아주 기가

막혔는데 특이한 것은 어머니는 식초를 넣지 않았다

물론 집집마다 입맛이 다르겠지만 나는 어머니의 입맛에

길들여저서인지 무생채 만큼은 식초를 거부한다.

다행인 것은 와이프도 내 입맛을 꼭 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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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끼 (명사) : 밤에 자다가 깨었을 때 마시기 위해 잠자리의

머리맡에 준비하여 두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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