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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밭에 앉아/그때 그시절

도둑눈 오던 날

by 소담* 2022. 12. 28.

소싯적 겨울이 오면!

우리들의 놀이터는 누가 뭐라고 해도 논배미가 최고였다

 

타작이 끝난 논은 넓어서 맘껏 뛰놀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위험한 곳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논배미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뛰어 놀았는지 벼 그루터기는 사라져

온데 간데 없고 다져진 논은 반들반들 윤기가 흘렀다

 

남자들은 주로 자치기와 말뚝박기를 했고 여자들은 목자놀이나 고무줄놀이를 즐겼다

 

그런데 아무리 재미있는 놀이라 할지라도 오래 즐기다 보면 싫증이 날 때가 있었다.

 

이럴 때면 남자들은 여자친구들을 괴롭혔다

고무줄도 끊어 버리고 목자놀이를 할 때 갖고 놀던 *사금파리도 도랑에 차버리고.......

 

이렇게 훼방을 놓다보면 화가난 여자들이 남자들을 잡기위해 부리나케 쫒아 다녔는데........

 

우리들의 어린 시절은 늘 이렇게 짓궂었다. 쫒고 쫒기는 *가댁질로 한참을 

뛰어놀다 보면 겨울날의 짧은 햇살은 금세 어두워 졌고

누이들과 나는 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 무렵 시작된 귀신이야기.

 

달걀귀신, 멍석귀신, 처녀귀신, 몽달귀신 희한한 귀신은들 언제나 밤을 두렵게 했다

 

귀신중에서도 제일 무서웠던 귀신은 측간귀신이었는데 화장실 한 번 가려면

무서워서 온몸을 떨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계시는 밤에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도란도란 속삭이던 우리들의 목소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개짓는 소리가 자장가로 이어지며

우리들의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아침이 돌아왔다

 

아이고야~~눈이 하~~~~얗게 왔네!

 

밥을 짓기 위해 밖으로 나선 어머니께서

토방에 놓인 고무신을 신기전에 혼잣말로 하신 말씀이다

 

눈이라는 말에 이불 밑에서 고개를 배꼼이 내밀며 문을 열어보았다

 

눈이 하얗게 온 마당을 덮고 있었다.

아무도 모른 사이 밤새 *도둑눈이 내린 것이다

 

와 ~~~신난다.

 

나는 이불을 박차고 나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고향의 우리 집 뒷마당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늙은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 옆으로는 장독대가 있었는데 여기에 쌓인 눈들이 왜 이렇게 정감이 가는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눈은 역시 장독대와 감나무, 대나무에 쌓인 눈이 제멋이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싸리비를 챙겨 들었다. 감나무 옆 텃밭에는 겨우내내 먹을 수

있도록 장독을 땅에 묻고 그 안에 김치를 저장해 두었는데 어머니는 장독에 있는

김치를 꺼내기 위해서 싸리비를 들고 눈을 좌우로 쓸어가며 길을 내었다

이윽고 빨간 김치포기와 함께 하얀 무 동치미가 양푼에 담겨져 오는데

그 사이 바람이 불며 감나무 위에 쌓인 눈이 김치위로 하얗게 흩날렸다

 

눈내린 장독대 풍경 <사진출처 : 다음 카페 "정남진을 아시나요"(정남진)>

 

나는 앞마당을 쓸기 위해 넉가래를 챙겨 들었다. 눈이 조금 내리는 날이면

빗자루로 가능하지만 많은 눈이 내리면 빗자루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눈을 쓸고 넉가래로 밀고 한참을 눈과 씨름을 하다보면 어느새 리어카에 

눈이 가득 실려졌다. 이렇게 모아진 눈은 동구 밖 넓은도랑에 버려졌다

 

마당에 눈을 다 치우고 나면 때 맞추어 어머니께서 준비한 아침 밥상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구수한 시래기국에 조물 조물 잘 무쳐진

동치미 채가 도둑눈 오는 날 풍경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아침을 먹고 장독대에 쌓인 눈을 보기 위해다시 뒷마당으로 향했다

 

그 순간 대숲에 쌓인 눈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평화롭던 대밭이 갑자기 소란해 지며 깜짝 놀란 멧비둘기 한 쌍이 푸드덕

요란한  날개짓과 함께 동산 위 저 멀리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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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금파리 : 사기그릇이 깨져 생긴 작은 조각

* 가댁질 : 아이들이 서로 잡으려고 쫓고, 이리저리 피해 달아나며 뛰노는 장난

* 도둑눈 : 밤사이에 사람들이 모르게 내린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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