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에 새벽녁이면 깊은 잠을 깨우는 소리가 있었다.
썩썩썩 무를 써는 소리.
앞집에도, 옆집에도, 뒷집에도 썩, 썩, 썩
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새벽녘.
어머니는 늘 새벽같이 일어나서 무를 썰었다.
무써는 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눈을 비비며 어머니의 손길을 바라보았다.
동그랗게 썰어진 무가 가지런히 놓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무채로 변하기 시작했다. 무채는 다시 옆으로 돌려서 썰게 되는데
이때 밥알처럼 크기가 작게 변했다.
얘야, 무줄까!!!
어머니는 파란 무 머리를 동강내어 먹기좋게 한 조각을
내 입에 넣어 주셨다.
아삭 ................. 이불 밑에서 맛보는 무의 향기!
약간 매운 맛도 풍기면서 어찌나 시원하던지.
마침내 햇살이 밝아지며 아침 밥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무밥은 강된장에 비며 먹어야 제맛인데 허겁지겁 먹다보면
밥이 코로 넘어갔는지 목으로 넘어갔는지 금세 밥 한 공기가
뚝딱 사라져버렸다.
누이들과 밖을 나서는 길.
하루종일 자치기를 하고 얼음을 지치다보면 동짓달 짧은 해는
금세 서산을 넘었고 긴 겨울밤은 고요 속을 헤집고
아랫목으로 다가왔다…….
잠자리에 들 무렵! 뜨겁게 달구어져 있는 아랫목을 밀쳐내고
자꾸만 윗목으로오르다 보면 어김없이 자리끼로 놓아둔
숭늉이 손에 잡혔다.
무를 조리에 걸러내고 난 무밥의 숭늉!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그때의 무 숭늉맛을 잊지 못한다.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이 맛을 모른다. 얼마나 구수한지를...
무 하면 빠트릴 수 없는 것이또 하나 있다. 바로 무생채다.
어머니는 무생채를 만들 때 무청도 몇개씩 같이 넣었다
손수 직접 담가놓은 멸치젓을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그 맛이
아주 기가 막혔는데 특이한 것은 어머니는 식초를 넣지 않았다
물론 집집마다 입맛이 다르겠지만 나는 어머니의입맛에
길들여저서인지 무생채 만큼은 식초를 거부한다.
다행인 것은 와이프도 내 입맛을 닮았다.
오늘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무생채가 눈에 들어왔다
무생채를 보는 순간 새삼 어머님의 손맛이 그리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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