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삽을 들고/이야기꽃

"삐삐"의 추억

by 소담* 2023. 8. 31.

33073356

84184078

 

이 숫자는로또 번호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금복권 번호도 아니다.

 

군대시절에  분신처럼 따라다녔던 나를 상징하는 번호다.

 

33073356 이 번호는 훈련병때 처음으로 목에 달았던 군번.

이때만 해도 나는 이 군번이 마지막 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사관 후보생으로 차출되면서 새롭게 부여받은 군번.

84184078 그래서 이 숫자는 하사 시절의 군번이다

 

희한하게도 이 숫자는 기억하기도 싫은데 왜 이리 잊혀 지지 않은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수수께끼다.

 

7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 시절의 소담!

 

퇴근 길 차안에서 우연히 라디오를 듣게 되었다.

 

방송 내용인즉 요즘 우리 주위에 자기 가족들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한 사람들이 꾀 많다는 것이었는데.

 

그때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동료가

 

아니! 어떻게 가족들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이건 말도 안 돼!” 하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듯 피식 웃었다

 

웃고 있는 그를 향해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가족들의 전화번호도 모르고 살고 있다니 참 한심스런 사람들입니다.”

 

차안에서 내렸다

 

가족들의 전화번호도 모르고 살다니.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우리 가족들의 전화번호를 기억해 보기로 했다

 

와이프와 딸 그리고 아들까지.순서에 따라 잘 맞아 들어가던 번호가

마지막 아들 전화에서 그만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가운데 번호가 이 번호 인 것 같기도 하고 저 번호 인 것 같기도 하고 헷갈렸지만

마침내 네 자리의 숫자 하나를 모두 기억해 냈다

 

폰을 열고 조금 전 와이프와 딸의 전화번호를 맞추었듯

기대를 하며 즐겨찾기에 등록된 아들의 전화를 확인하는데.

 

아뿔싸!

 

그 숫자는 내 아들의 전화번호가 아니었다.

 

내가 내 아들의 전화를 모르고 있다니!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듯 정신이 몽롱해 졌다

 

차안에서 동료에게 했던 말.

한심스런 사람들이라고 했던 그 말이 결국 나를 두고 한 셈이니

내가 나를 생각해도 제 정신을 갖고 사는 것인지

내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이프와 아들, 딸의 가족 모두의 주민번호를 늘 다 외우고 있는 내가 아니었던가.

 

집으로 돌아왔다.

퇴근하는 나를 깜짝 놀란 듯 바라보는 아들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아들아!

너 엄마 전화번호 아니?

아빠는.

누나는.

 

그때마다 아들은 마치 시험 볼 때 다 알고 있는 문제라도 나 온 듯

술술 잘도 답변했다. 그것도 하나도 틀리지 않게 정확히.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스킨십이다

 

나는 얼른 아들을 껴안고 역시 내 아들이야!” 하면서 힘껏 얼싸 안았는데

그 순간 “헤헤”  까불게 웃는 아들이 그저 기특하기만 했다

 

잠시 후 딸과 와이프가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똑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공교롭게도 모녀 둘 다 아들의 전화번호를 모르고 있었다.

역시 나처럼 첫 번째 번호와 끝 번호는 알고 있었으나

가운데 숫자는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

 

자기변명이라고나 해야 할까.

 

네 번이나 바뀐 아들의 전화번호도 문제였지만

진짜 큰 원인은 다른데 있었다.

 

모두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원터치로 쉽게 전화를 할 수 있는 단축번호와

즐겨찾기에 등록해 버린 번호들이 문제였다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가족들의 전화만큼은 기억했어야 했다

 

마치 군대시절 잊혀 지지 않은 지독한 군번처럼.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할 지도 모른다.

그까짓 번호야 폰에 다 저장되어 있는데 알고 모르고가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폰을 잃어버리고 그 후에 벌어질 일은 차후의 일이다

애정 없는 관심은 무관심과 다를 바가 없다.

가족들에 대한 애정은 바로 이 관심 속에서 출발한다.

 

새삼 퇴근길 차안에서 듣게 된 라디오 오프닝 멘트 한마디에

오늘하루 나를 다시 돌아다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글을 마무리 할 무렵 새삼스레 삐삐가 생각이 났다.

 

삐삐가 있던 그 시절.

 

그래도 그때는 가족은 물론 친구들 전화번호도 다 외우고 살았다.

삐삐하고 소리가 울리면 숫자만 보고도 누구누구의 전화인지

금방 알 수 있었는데 요즘은 이 숫자와 자꾸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소담이 총각 때 애지중지 옆구리에 차고 다녔던 삐삐다.

세월이 흐른 지금 삐삐는 창고 안에서 긴 잠을 자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왔다가 가장 최근에 골동품이 되어버린 비극의 삐삐.

유행가 가사 속에 나오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을 받고  어느 날 우리 곁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꽃삽을 들고"의 실린 모든 글은 "이용허락표시(ccl)"가 걸려 있습니다.

 

다음 블로그 "꽃삽을 들고"의 실린 모든 글은 끝머리 오른쪽 하단에

위와 같은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이 표식은 이용허락표시(ccl)가 담겨있으니 주의 하라는 내용입니다.

제 블로그의 CCL은 몇 가지 이용방법 및 조건을 부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원래의 저작자를 반드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상업적 이용을 절대 하지마라는 것이며

세 번째 절대 글을 변경하지 마라는 내용입니다

"다음" 블로그 "꽃삽을 들고"의 실린 모든 글은 위와 같이 "이용허락표시(ccl)"가

걸려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일부사진 제외)

이와 같은 일이 지켜지지 않으면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