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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밭에 앉아/모정의 세월

사모곡(思母曲)

by 소담* 2016. 9. 14.

(아래에 펼쳐진 글은 올 초에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며

작년 추석 때의 풍경을 재현해 낸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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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아이들을 깨웠다

 

평일 날 같으면 일찍 깨운다고 불만이 많던 아이들도

고향에 가는 날이면 군소리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향에 갈 준비를 마친 우리는 설레는 맘을 안고 고향 길에 나섰다

가다 서고 또 가다 서던 고속도로에서의 체증.

 

얼마를 달렸을까!

 

한참만에야 우리는 마을 어귀에 도착하였다.

그때 동구 밖 저 멀리로 어머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명절날이면 늘 그랬던 것처럼어머님은 변함없이 도랑가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꼬부장한 모습에 실버카 손잡이를 꼭 잡고

우리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계시는 어머님.

차에서 내린 아들과 딸이 어머니를 향해 뛰어갔다

 

할머니!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에 양손을 벌리며

 

아이고, 우리 손주들! 어서 와라

 

손주들을 껴안으며 어머님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아이들과 흥에 겨웠다!

 

어머님! 내가 부르는 소리에 뒤늦게 어머님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가! 왜. 인자 오냐.

 

내가 너를 기다리다가 눈이 빠져 불것다.

허리도 아프고 물팍도 아프고 지금 내가 포도시(겨우) 걸어 댕기는디.

집에서 몇 번을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했는지 모르것다!

일찍 오제 그랬냐!

 

어머님! 명절이라 차가 밀려서 그랬어요.

 

몸도 안 좋은데 뭐 하러 이렇게 나오셨어요.

 

그냥 집에 계시면 제가 어련히 알아서 올 텐데.......

 

그래도 그렇지! 우리 아들이 온다는 디 어떻게 집에만 있어!

 

어머님의 찐한 전라도 사투리를 듣는 순간 비로소 고향에

도착한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와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골목길에 들어섰다.

 

실버카를 밀고 앞장서서 가시는 어머님!

 

그런데! 어머님의 발걸음이 작년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가다 쉬고 또 가다 쉬고 뒤따라 가는 내 발걸음도  자꾸 멈춰졌다.

이런 어머님을 바라보며 새삼 가는 세월이 어찌나 야속하던지.

 

마침내 마당에 들어섰다. 그 순간 어머님의 체취가 물씬 풍겨져오는데.......

습관처럼 마루에 놓인 냉장고 문을 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어머님이

나를 위해 사다 놓은 막걸리 두병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내가 막걸리를 꺼내자 어머님이 와이프를 불렀다

 

아가정게에 들어가면 가운데 솥에 내가 추어탕 맛있게 끓여 놓았다

 

아들이 술 한 잔 한다는데 우리도 같이 저녁밥 묵자!

 

잠시 후 와이프가 부엌에 들어가더니 금세 밥상을 차려 나오는데

모락모락 김이 나는 추어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역시 어머님의 손맛은 변함이 없었다.

저녁밥을 먹는데 아이들도 와이프도 모두 추어탕에 신이 났다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남은 막걸리 한 병을 모두 비우고.

 

이윽고 모두가 잠자리에 들 시간.

 

그 사이. 어머님의 고향 뉴스가 시작 되었다.

 

아가! 누구누구의 아들이 서울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경로당에서 잔치를 벌였단다

아가! 누구누구의 어머니가 치매가 걸려서 자식들이 요양병원으로 데리고 갔단다

 

그리고 누구누구는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등........

 

끝없이 이어지는 고향 소식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방안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멀리서 간간히 개 짓는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어머니와 나는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저녁에 마신 막걸리 탓이었을까! 새벽녘에 목이 말라 잠에서 깨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물을 마시고 잠시 마루끝에 걸터앉았다.

 

때마침 마당위로 휘영청 둥근 보름달이 둥실 떠있고 새벽 달밤에 어울리게 

토담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애잔하게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명절날이 돌아오면 어머님은 양은솥에 추어탕을 끓여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올 초 일월에 어머님이 하늘나라에 가셨다

 

이제는 고향소식을 전해 줄 어머님도 처량하게 울어대던 귀뚜라미 울음소리도

마당위에 휘영청 둥근달도 추억 속에 그림으로만 남았다.

 

어머님이 살아 계셨다면 지금 쯤우리 가족 모두가 고향집에 있을 시간인데.......

 

지금은 갈 곳이 없다. 부모님을 일찍 잃고 고향을 떠난 친구들이 한결같이

말하던 그때 그 말이 오늘에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고향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고향이라고....... "

 

내일이면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자꾸 어머님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명절날 동구 밖 도랑가에 서서 나를 기다리던 어머님의 환한 얼굴 대신

요양원 병상에서 누워계신 슬픈 모습만 자꾸 떠오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어머님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만 발길이 점방으로 향했다

막걸리 두 병을 사서 돌아오는데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그 사이

눈치 빠른 와이프가 식탁에 안주를 차려 놓았다

 

지금 두 아이들과 와이프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로 영화를 시청하고 있다

희희낙락거리는 와이프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누가 봐도 분명히 행복한 풍경인데 이런 행복한 풍경을 앞에 두고

나는 왜 이렇게 ! 가슴이 시리운 걸까

 

어머님이 몹시도 사무치게 그리운 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술잔에 가득 찬 막걸리가 유일한 내 벗이 될 것 같다.

 

한 잔.두 잔.잔이 비워지고 있다

 

나도 모르게 살아생전 어머님이 즐겨 부르시던 노래

고복수의 짝사랑이 입에서 절로 나오는데.

 

~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 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평소엔 꿀꺽꿀꺽 잘도 넘어 가던 술이 오늘따라 자꾸 목에 걸렸다

술맛이 왜 이렇게 슬플까!

 

갑자기 주르룩 눈물이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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