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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삽을 들고/이야기꽃

지워진 전화번호

by 소담* 2020. 9. 3.

올 여름!

날이 더워도 너무 덥다.

지긋지긋한 더위를 빨리 보내고 싶은 마음에 부랴부랴 8월의 달력을

넘기는데 뜻밖에도 9월 30일 빨간 숫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나머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첫 날이다

 

올 추석은 다른 해 보다 유난히 더 빨리 든 것 같다.

 

이렇게 명절날이 돌아오면 두고두고 떠오르는 풍경이 하나 있는데.

 

해마다 명절날이 되면 어머니께서는 곱게 장만한 음식을

상에 가득 차려 놓고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렸다.

 

우리 팔 남매!

어디를 가든지 굶지 않게 하여 주시고.

비가오나 눈이 오나 조상님 들이 늘 보살펴 주셔서

어떻든가 자식들에게 해가 없이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해달라고…….

 

양 손바닥을 마르고 닳도록 비비며 기도를 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어제인 듯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볼 수 없게 된지도 햇수로 벌써 5년째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참 많이도 울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병상에 누워 계신 슬픈 모습만 떠올랐는지…….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나니 병상에 누워 계신 모습보다는

이제는 명절 날 동구 밖 도랑가에서 나를 기다리며

환하게 웃고 계시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어머님이 살아 생전 늘 애지중지 다루었던 고향의 장독대 풍경이다

 

오늘 오후!

 

어머니께서 그토록 간절하게 기도했던 팔 남매 중

한 사람의 전화 번호가 내 핸드폰에서 지워졌다.

 

며칠 전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알 수 없는 어떤 숫자들이 계수기에서 쉴 새없이

오르내리더니 갑자기 숫자가 멈추면서 느닷없이 

작은 형님의 이름 석자가 떠올랐다.

 

꿈에서 깨어나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숫자 계수기라는 것이 멈추더라도 숫자가 보이는 법인데

뜬구름없이 왜 형님의 이름이 떠올랐을까!

궁금했지만 꿈이라는 것이 개꿈도 있고 술 한잔 마시고

어수선한 꿈도 여러 번 꾸었기에 별 생각없이 지나쳤다.

 

형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날 전화라도 한 번 해 볼 것을 하는 아쉬움이 뒤늦게 남는다.

 

백세 시대라고 하는 요즘.

 

일흔 한 살의 나이는 너무 일렀다.

 

그렇지만 어떡하겠는가?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고 했다

하늘이 부르면 가야하는 것이 운명(殞命)이거늘…….

 

전화번호를 지우고 난 후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는 그때

그동안 형님과 함께했던 추억들이 머리에서 새록새록 떠올랐다.

 

소싯적 어느 겨울날!

형님이 판자와 철사를 가지고 톱과 망치로 뚝딱뚝딱 썰매를

만들어 주었다. 썰매를 만들고 남은 긴 판자로 나무 칼도 

만들어 주었는데 친구들이 내 목검을 얼마나 부러워했던지…….

 

형님은 손 솜씨가 참 좋았다

동산에 있는 대나무로 가오리연을 만들어 주었는데

논배미 위에서 연을 날리는 그때 연이 어찌나 하늘을 잘도 오르던지

내 마음도 덩달아 하늘 높이 둥실둥실 날아 올랐다.

 

이렇게 다정했던 형님도 때로는 미울 때도 있었다.

 

논밭에서 일을 할 때 어린 나를 악착같이 부려먹었다.

멀리 비홍재 가는 길에 조그만 밭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으로

거름을 실어 내는 날이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리어카에 거름을 잔뜩 싣고 언덕을 오를 때는 어린 나도 있는

힘을 다해서 힘껏 밀었건만 형님은 내가 건성으로 밀고 있다고

산천이 떠나 갈 듯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형님의 고함소리는 열 두살이나 작은 내게는 얼마나

무서웠던지 벌벌 떨어야만 했다.

 

한편 형님은 의외로 짓굳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가을날 벼 타작을 하는데

형님이 막걸리를 사발에 가득 따르더니 내게 건네 주었다

못먹는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형님은 겁박을 하면서

강제로 마시라고 했는데 하는 수 없이 꾸역 꾸역 다 들이 마셨다. 

 

한 참 후 볏짚을 나르는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하늘도 돌고 땅도 돌고 담벼락이 기울고.......

나는 그만 감나무 아래 볏단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잠에서 깨어난 후!

 

형님에게 혼이 날 줄 알고 벌떡 일어섰는데 정작 형님은

나를 보며 실실 웃으며 장난을 쳤다.

 

야! 이놈아 술을 마시면 일을 해야지 잠을 자면 어떻게 해.

 

화을 내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형님을 나를 보며 연신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가 형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올 초 봄날이었다.

 

형님과 술을 마시면 소싯적 그때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했는데

이제는 내 기억속에서만 남게 되었다.

 

형님!

이제는 부디 외로움도 슬픔도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 옵소서.

 

! 얄궂은 운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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