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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밭에 앉아/그리운 고향

그리운 내 고향 옹정리

by 소담* 2010. 11. 2.

 

사진출처: 다음 카페 "옹우회"(어이)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는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

 

마을이 얼마나 좋은지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마을이다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옹정"을 찾아보면 "독우물"이라고 나온다

 

내가 태어난 고향 옹정리에는 "독우물"이 있다

마을유래가 된 이 "독우물"을 일제강점기에 행정편의를 위한답시고

한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도가지 옹" 또는 "항아리 옹"이라고 부르는

"옹" 자에 "우물정자"를 넣어 옹정(甕井)이라고 부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 옹정리라는 명칭을 쓰는 마을이 여럿 있다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가 그렇고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옹정리 가 그렇다

 

'옹정리'라는 마을 이름도 각기 사연이 있고 우물의 생김새도

다 다르겠지만 특히 내 고향 옹정리의 독우물은 생김새가 남다르다

 

독이라는 말은 원래 여러가지 뜻을 갖고 있다.

도가지, 옹기, 질그릇, 항아리 등으로 장독을 일컫기도 하지만

내가 사는 전라도 에서는 돌을 독이라고 부른다.

사전에는 없지만 돌의 옛말은 돍이라는 설도 있는데 내 고향

독우물은 이렇게 돌로 이루어진 샘이라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우물 안 바닥도 전부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모래 하나 찾아 볼 수 없다.

외형상 항아리 속에 항아리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독우물 이라고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돌우물 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항아리처럼 보이는 독우물이라고 해도 좋고

독(돌) 에서 물이 나온다고 독우물이라고 해도 좋다.

 

이 독우물은 동산이라고 불릴 만큼 야트막한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데 우물 주위에는 대략 삼십 여 가구의

주민들이 옹기종기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지금이야 어디를 가던 집집마다 수돗물이 나오지만

물이 귀했던 그 시절에 독우물은 귀중한 식수원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독우물은 이제 박물관에 보존된 것 처럼 투박하게 변해 버렸다

우물을 재 정비를 한다는 뜻은 고왔으나 주변에 돌담들이

온통 시멘트로 도배되어 토속적인 풍경을 잃어버렸다.  

 

 

우물을 재정비 한 현재의 독우물 전경 <사진출처: 다음 카페 "옹우회(김경옥)>

 

 

말만 들어도 설레는 내 고향 독우물!

 

우리 마을은 1970년대 초반만 해도 313가구에 인구수가 1,766명 이었다.

요즘 4인 가구 기준으로 계산 하면 440가구가 될 만큼 마을이

엄청나게 큰 규모였는데 이렇게 마을이 크다보니 안고샅을 기점으로

금정과 석정으로 나뉘어져 마을 이장님도 항상 두 분이 계셨다

 

옹정리 우리 친구들만 60명 가까이 이른다면 믿어지겠는가?

지금도 초등학교 앨범을 보면 이 친구가 누구인지 어느 골목에 살았는지

긴가민가 헷갈리는 친구가 있을 정도다

 

이렇게 마을이 크다보니 시내버스 정류장도 고룡과 오봉정,

그리고 면사무소등 이렇게 세 곳이나 된다.

아마도 한 마을에서 정류장이 세곳이나 되는 마을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내 고향 옹정은 규모가 꽤 큰 동네였다

 

우리마을 앞에는 국도 17호선이 있다 

소싯적에는 이 도로를 신작로로 또는 한길가로

불렀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은 "김주열로"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김주열이 누군가?

 

4.19세대가 아닌 나로서는 감히 어떠했다고 이야기 하기는 무리다

다만 문헌상으로나 동네 선배 또는 어르신들에게 들은 이야기로 유추해 볼 일이다.

1960년 4.19의거의 한편에는 김주열 열사의 희생이 있었다.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실종, 한 달 후인 4월 10일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유기되어 마산 앞바다에 발견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학생과 시민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결국 자유당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게 되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사진출처 : 다음 카페 "옹우회'(김경옥)

 

한편 금지면 옹정리 우비산에 열사가 잠들어 있는데

그를 추모하기 위해 묘지 앞에 추모각이 세워져 있다

 

최근 그가 자란 생가가 복원 되었는데 이 골목에 독우물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이 독우물도 함께 복원되었으면 좋으련만.

 

옹정은 뒤로는 산을 끼고 앞으로는 섬진강의 상류에 해당하는 요천수가 있다.

풍수들이 말하는 이른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사법연수원장과 대법원 대법관을 지내시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배석 분이 옹정리 출신이고 국회 사무총장을 지내시고 구로에서 11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내신 김병오 씨도 그리고 현재 장관급에 해당하는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으로 있는 양병희 소장도 자랑스러운 우리 옹정인이다

 

하늘에서 바라본 내고향 옹정리 (사진출처: 남원농악보존회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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