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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밭에 앉아/그리운 고향

남원농악의 뿌리 독우물 굿

by 소담* 2023. 8. 20.

내 고향 남원에는 유명한 남원농악이 있다.

 

농악깨나 공부 했다고 하면서 남원농악을 모르면 ABC도 모르고

영어 공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국적으로 유명한 굿인데

이 굿의 뿌리가 바로 내가 살던 옹정리의 독우물이다

그래서 남원농악은 곧 "독우물 농악"이라 부른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독우물(옹정리) 표지석!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된 독우물! (365일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

 

우리 마을은 앞으로 요천수가 흐르고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있어서

풍수적으로 얘기하면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요천의 하류에 해당하는 금지면 일대는 남원에서 가장 넓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는 곳인데 이런 지리적 환경 덕분에 쌀이 아주 풍부했다.

 

쌀이 풍부했다는 것은 곧 배가 부르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배가 부르면 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때 나오는 소리가 바로 그 유명한 "판소리"다. 

 

판소리는 서편제 동편제 중고제 등으로 나누어진다. 서편제가 여성적이라면

우리 남원의 동편제는 남성적이라 할 만큼 그 소리가 우렁차고 힘이 있다

 

이렇듯 소리에서 판소리가 있었다면 굿에도 역시 판이 있었다.

굿판이라고 불리었던 "판굿"이 바로 그것인데  판소리는

'소리'를 한다고 했고 '굿판'은 판을 벌인다고 표현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사람이 다니는 길을 '질'이라고 불렀는데

질 위에서 펼쳐지는"질굿"을 오늘날은 "길굿"이라고 한다.

 

명절이 돌아오면 마을 입구에 '질굿'이 시작되는데 

요란한 소리를 찾아 가다 보면 꼭 눈에 띠는 아저씨 한분이 계셨다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르고 이마에는 커다란 꽃봉오리가 달려 있었는데

큰 깃발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던 아저씨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 씨 아저씨.

늘 흥에 겨워 사시는 이 분을 우리 마을 사람들은 "세월양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깃발은 꼭 김씨 아저씨 몫이었다. 

 

깃발 테두리에는 굵은 털실이 여러 가닥으로 짜여진 술이 감싸고 있었고

바탕에는 "농자천하지대본" 이라는 큰 글이 길게 새겨져 있었다.

김씨 아저씨는 삼색 띠를 양어깨로 매어 허리춤에 묶고

한 잔술에 흥이 겨우면 두 손을 놓고 걷는데 신기한 것은

이때 깃대가 넘어지지 않고 배위에서 꼿꼿이 서 있었다.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마치 묘기를 보는 듯 힘찬 박수를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신 들렸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소리가 아닐련지. 

 

이렇게 시작된 질 굿은 마을 앞 넓은 공터에서 한바탕 신명나게

판을 벌이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판굿'이다

 

한참을 신명나게 판을 벌이고 나면 이제는 개인의 솜씨가 펼쳐진다.

 

깃발을 들었던 김 씨 아저씨는 징과 버꾸(소고)를 아주 잘 쳤다

버꾸가 하늘로 오르다가 갑자기 땅으로 내리다가

그러다가 한발을 들고 가랑이 사이로 치면서 빙글 빙글 도는데.

 

징도 마찬가지였다. 징채를 허공에 두르고 돌리면서 깨금발에 회전하는

그 모습이 마치 숫두루미가 암컷에게 구애를 할 때 빙빙도는 날개짓 처럼

어찌나 고상하고 아름다웠는지.......

 

꽹매기라 불리었던 꽹과리 이 꽹과리도 그냥 치는 게 아니었다.

단원을 이끄는 상쇠는 상모를 쓰고 그 위에는 하얀 솜털 같은

부들을 달고 있는데 이 부들을 세우기도 하고 앞으로 뉘이기도 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이런 묘기를 부릴 때는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그렇다면 또 장구춤은 또 어떠했는가!

 

장구를 어깨에다 비스듬히 둘러메고 춤을 추는데

이때 손에  쥐어진  장구채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원형을 그리며 신나게 춤을 추다가 어느 순간 소리를 멈추며

장구채의 오묘한 손놀림이 시작되는데.......

 

흐느적거리며 허공을 맴도는 장구채의 손놀림은

마치 나비가 춤을  추는 듯 그 모습이 무척 이채로웠다

 

마지막에는 상고 춤이 기다리고 있었다.

깃이 땅에 닿지 않고 회전을 하며 공중제비를 할 때는 좁았던 판이

넓게 벌어지면서 여기저기서 요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

 

이렇게 우리 마을 독우물 굿은 웅장했다

 

하늘에서 바라본 내 고향 독우물 전경 (1970년대 초반 독우물은 313가구에 인구수가 1,766명 이었다)

 

현재 독우물 굿의 계보는

① 남원 독우물굿 → ② 남원 독우물굿 + 전판이굿 → ③ 유한준굿 →

④ 강태문굿 → ⑤ 류명철굿 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자칫 사라질 뻔했던

독우물 굿은 강태문의 전수를 받은 그의 제자이자 전북 무형 인간문화재인

상쇠 류명철 선생을 중심으로 하여 전승되었다

 

현재 류명철 선생은 고인이 되었지만

생전에 그가 가르친 후학들이 '남원농악보존회'를 이끌며 

독우물 굿은 오늘도 꾸준히 계승되고 있다.

 

( 아래 동영상은 남원농악의 뿌리인 독우물 굿을 재현한 풍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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