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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밭에 앉아/그리운 고향

옹정역 엘레지

by 소담* 2016. 9. 20.

 

책가방 옆에 끼고 모자를 벗어 손에 쥔 채 친구와 나는

뒤를 쫒아오는 아저씨를 피해 논을 가로질러 뛰고 또 뛰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한참을 달리다 뒤를 돌아보니 친구 한 놈이 보이지 않았다.

아뿔싸, 친구가 그만 아저씨에게 잡히고 말았다.

호되게 따귀를 맞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며 잡히지 않은 우리들은

서로를 바라 본 채 가쁜 숨을 고르며 희희낙락 웃어댔다

 

위 그림은 고등학교 시절 역무원 아저씨를 피해 도둑기차를 탔던 풍경이다.

 

그 시절. 학교를 마치면 남원역으로 향했다.

남원역 광장에는 철마다 아름다운 꽃들로 단장이 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이 광장을 피해 다녔다

도둑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플랫폼의 반대쪽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으로부터 멀지않은 주변은 경계 목으로 측백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데

군데군데 철조망이 있었지만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 개구멍이 뚫려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기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플랫폼에서는 언제나 깃발을 든 기수 아저씨가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아저씨의 눈을 피하기 위해 나무 뒤에 숨어서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가 들어 오기 전에 플랫폼에 들어서면 기수 아저씨에게 들킨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우리들은 반드시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 왔을 때 

작전(?)을 시작했다

 

플랫폼에 기차가 멈추게 되면 기수 아저씨는 기차 반대쪽에 있는 우리를 보지 못한다.

멈추어선 기차가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어준 덕분에 이 틈을 이용해서 잽싸게

뛰어들어 기차를 탔다.

 

성공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차안에 들어서면 표 검사를 하는 차장이 있는데

이제는 차장과의 한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수가 좋은 날이면 옹정역에 도착 할 때 까지 표 검사가 없는 날도 있었지만

열에 예닐곱은 늘 표 검사를 했다

 

달리는 기차안에서 도망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

 

차장이 가까이 다가올 무렵이면 뒤로 뒤로 도망을 가는데 더 이상

도망 갈 곳이 없을 때 쯤. 다행히 기차가 중간 기착점인 주생역에 도착했다.

이럴 때 단숨에 뛰어 내려 차장이 지나온 앞 칸으로 잽싸게 뛰어가서 다시

기차에 올랐다. 이렇게 해서 무사히 옹정역에 도착하면 또 한고비를 넘겨야 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수검하는 역무원 아저씨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 아저씨를 피하기 위해 기차의 맨 앞칸에 몸을 실어야 했다

그래야만 입구에서 표를 받는 아저씨와 멀리 떨어지기 때문에

쉽게 도둑기차의 최후를 벗어 날 수 있었는데.

 

어쩌다 잡히는 날에는 죗값으로 무수히 얻어 터졌다 

 

우리는 그렇게 도둑기차를 탔다. 돈이 없던 아이들은 돈이 없어서 탔고

돈이 있던 아이들은 그 차비를 모아서 다음날 남원역 근처에 있는

갈매기빵집에서 찐빵을 사서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시절 남원 갈매기빵집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만큼 꽤 유명했다.

 

아! 그리운 내 고향 옹정역

 

길을 지나치다 나훈아의 고향역이 나오면 나는 당연히 우리 옹정역이 떠오른다.

가을이면 역 주변에는 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루었다.

 

사실 우리 옹정역은 화려하지는 않았다. 변변한 대합실 하나 갖추지도 못했다

사방이 트여 있고 기둥 몇 개에 비 가림용으로 씌워진 지붕 아래로 긴 의자

하나 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70-80년대 옹정역 풍경. 옹정이라는 두 글자가 정겹다. <사진출처: 1993 철도요람집)>

 

세월이 흘러 역무원 한 사람이 겨우 머물만한 조그만 매표소가 하나 생겼지만

그 것이 옹정역의 전성기이자 마지막 이었다.

 

하지만 내 고향 옹정역은 겉이 다는 아니었다.

무수한 삶들이 이곳을 스쳐 지나갔다

일찍이 시인 노향림은 옹정역을 이렇게 노래했다

 

 = 비둘기호 (노향림) =

 

몇 걸음 더 가고 싶은 비둘기호가

마지막으로 남원 옹정역에 닿는 날

날개 없는 비둘기들 사이에 나는

앉아 있었다. 마음은 마냥 산줄길

타고 넘어가 구른다.

기적소리도 없이 굴러가는 낡은 쇠바퀴

소리 하나 붙들지 못했다

나를 붙드는 건

밤톨만큼씩 굴러다니는 사투리였다.

장꾼들이 이고 지고 온 보퉁이마다

눈이 부은 잠 부족한 아침이 꽂혀 잇다.

보석같이 반짝이는 찬 서리 묻은 하늘이 덥혀있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적삼 아래

둥그런 젖무덤을 보인 아낙들이

제 키들을 낮추며 비둘기호에서 내린다.

졸업 사진 속 얼굴 같은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맘껏 서성인다.

집찰구 밖으로 뚫린 역 마당엔

옆구리가 다 터져 나온 보퉁이들

나도 주저앉는다.

.............................................................................

 

익산을 기점으로 해서 종착역 여수까지 달리는 전라선.

 

누군가가 멋있는 역 풍경을 추천 해 달라고 한다면 나는 당연히

우리 옹정역을 추천하고 싶다. 사탕 발린 소리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춘선에 정동진역이 있다면 전라선에는 우리 옹정역이 있다.

기차는 금지평야 한 가운데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는데.

 

마치 바둑판을 연상시킬 만큼 잘 정리된 드넓은 평야는 그야말로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여름철이면 벼들의 싱그러운 녹색이 끝없이 펼쳐지고 가을이면 온 세상이

황금으로 덮어 놓은 듯 노랗게 물든다.

전라선 역중에서 사실 이렇게 드넓은 평야의 한 복판을 달리는 역도 없다

 

                        고리봉에서 바라본 금지평야다 

    사진 중앙에 좌에서 우로 길게 검은선을 이루고 있는 것이 전라선 철뚝길이다

                    생각해 보라 저 넓은 평야를 달리는 기차를....

               <사진출처 : 다음 블로고 "청아 암벽을 탐하러!"(청아)>

 

이글을 읽는 네티즌들 중 혹시 전라선을 타거든 옹정역을 지날 때 잠들지 않기를 바란다.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뒤로 하고

 

세월이 흐른 지금!

 

옹정역은 오가는 사람이 적다는 이유로 여행취급중지 역으로 묶여서 기차가 멈춰 선지 이미 오래다

 

복선화가 이루어지면서 뒤로 밀려난 플랫폼에는버스 정류장처럼 네모진 박스하나가 세워져 있다

 

그 안에 덩그러니 놓인 몇 개의 의자는 오늘도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지난 세월의 영화로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쏜 살처럼 스쳐지나가는 기차를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한때 서울역에서 "옹정이요" 하면 바로 티켓이 발행되던 이야기가 전설 속으로 이어지며

옹정역은 부침을 거듭한 채 이제는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으로 쓸쓸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 고향 옹정역 역사

 

1959년 7월 11일 무배치 간이역으로 영업개시

1967년 9월 12일 을종 승차권대매소 지정

1987년 1월 01일 을종 승차권대매소 지정취소(차내승차권지급)

2004년 7월 16일 여행취급중지

2005년 8월 5일 전라선 복선화로 역사이전

 

옹정역이 가장 왕성할 때는 1978년인데 이때 옹정역 승차인원은 연간 9만4천여 명 이었고

강차인원은 5만 8천여 명으로서 최고점을 달리다가 마지막 2004년 여행취급중지 전 마지막

승차인원은 19명 강차인원 148명이 고작이었다

 

이제 옹정역에서 기차가 멈출 날은 언제쯤 일까?

 

내일일까? 모레일까?

 

기차가 서지 않는 옹정역에 빈 의자가 쓸쓸하다 못해 애처롭기 그지없다.  

<사진출처 : 다음 카페 "나무를 찾아서 나를 찾아서"(나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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