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1월 하순.
해가 질 무렵.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 하늘이 어둡고 바람이 차갑다.
쌀 20kg 두 포대, 소주병에 담긴 참기름. 들기름 한 병, 고춧가루,된장,
김치 등 집을 나서면 당장 먹고 살아야 할 몇 가지 음식과 옷가지 등을
마루위에 올려놓고 어머니와 나는 잠시 마루 끝에 걸터 앉았다
잠시 후 약속한 친구의 봉고차가 집 앞에 도착했다
친구와 함께 포장해 놓은 물건들과 옷가지를 차에 싣는데
이를 지켜보던 어머니께서는 연신 입버릇처럼
“우리아들 잘 살아야 할 텐데”
“우리아들 잘 살아야 할 텐데”를 입에 달고 흐느끼셨다.
자주 찾아뵙겠으니 따라 나오지 말라고 애써 어머니 손을 뿌리쳤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동구 밖까지 따라 나오셨다.
마치 막둥이 아들이 고향을 떠나 아주 먼 곳으로 이사라도 가는 것처럼.
그렇게 눈물을 글썽이던 어머니는 내가 탄 봉고차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도랑가에 서서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내 심정을 알기라도 하는 듯
때마침 검은 신작로 위로 하얀 진눈깨비가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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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풍경은 소담 나이 34살때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 *제금(분가)나오던 소담의 한 시절을 그려낸 모습이다.
작지만 아담한 임대아파트에서 시작된 나의 첫 보금자리.
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서 나는 무던히 많은 노력을 했다
1985년 5월. 그때 나의 첫 월급은 12만원이었다.
3년제 500만원 월부금이 11만6천원이었는데 용돈 4천원을 빼고
나머지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열심히 저축을 했다
이 돈이 모아져서 시작된 것이 지금의 임대 아파트다.
물론 나이 마흔 살에 IMF를 만나서 부득이 직장을 명퇴하고 남원에서
이 곳 김해로 보금자리를 옮기기는 했지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때와 똑같이 나는 아직도 그 회사의 그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일요일 아침.
요란한 마이크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관리 사무소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주일전에 알려 드린 것처럼 오늘부터 수요일까지 관리사무소 이층에서
아파트를 특별 분양하고 있습니다.
각 은행들과 법무사들이 파견되어 상주하고 있으니 오늘 휴일날을
이용해서 분양계약을 체결하시기 바랍니다.
세월이 흘러 이 아파트에 거주한지 벌써 10여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임대아파트였던 우리 아파트가 이제 개인에게 분양을 하는 순간이다
미리 알려준 대로 여러 서류를 지참하고 이층에 올라가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이내 계약을 마쳤다
드디어 내 나이 쉰 한 살에 내 이름으로 된 집을 마련한 순간이다
계약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나를 축복이라도 하는 듯
흐렸던 하늘이 밝은 빛을 쏟아내며 노란 은행잎이 눈부시게 다가왔다.
이 좋은 날!
어찌 술이 빠질 수 있겠는가!
집에 있는 와이프와 아이들을 모두 불러냈다
이윽고 음식점에 들러 삼겹살로 배를 채우고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빠가 생에 처음으로 내 집을 샀다고…….
그런데 소주 두병이 참 나를 우습게 만들었다
온전하게 산 것도 아니고 담보 설정을 하고 산 집인데
그렇다고 평수가 넓은집도 아니건만 나는 아이들을 향해 큰소리로 자랑을 쳤다
이 놈들아!
아빠가 너희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 하나없이
아빠 힘으로 이렇게 집을 마련했어!
그러니 너희들도 엄마 아빠에게 의지하지 마!
너희들도 알고 있잖니!
아빠가 물려받은 것 하나 없어도 친구들이나 형제들에게
손 하나 벌리지 않고 떳떳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을.......
이런 내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두 아이들이
서로가 술을 따르겠다고 나를 재촉하는데.
그 순간 나도모르게 가수 현숙이 부른 "내 인생에 박수" 라는
노래가 절로 나왔다.
내 인생에 박수 내 인생에 박수
내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인생구단 세상살이 뭔 미련 있겠나
굽이굽이 내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저 달이 노숙했던 지나온 세월
눈물 없이 말할 수 있나
인생고개 시리도록 눈물이 핑 돌고
내 청춘은 꽃 피었다 지는 줄 몰랐다
달빛처럼 별빛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게 인생이더라
내 인생에 박수 내 인생에 박수
내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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