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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밭에 앉아/그때 그시절

추억의 급식빵

by 소담* 2011. 12. 12.

야!  당번 빨리 빵 타와~~~

 

초등학교 시절 종례 무렵이면 너나없이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잠시 뒤 당번이 양동이를 들고 소사 아저씨를 찾아 가는데.

 

그 사이 성질 급한 몇몇 아이들은 미리 복도로 마중을 나갔다.

 

마침내 당번이 돌아오고.

 

이때 마중나간 친구들이 외치는 소리에 따라 교실안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와! 하나씩 돌아간다.

 

이 한마디에 교실 안에 있던 우리는 함박웃음과 함께 교실이 떠나 갈 듯

박수를 치며 신이 났다

 

그 시절 당번이 빵을 타러 갈때 꼭 챙겼던 "함석 양동이'

 

빵이 양동이에 가득 차는 날이면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돌아가는데 당연히 신이 날 수 밖에........

 

하지만 양이 절반으로 줄어 든 날에는 다들 풀이 죽었다.

이런 날에는 하는 수 없이 짝꿍과 함께 반으로 나누어 먹어야 했는데.

 

이때는 연필 깎는 칼이 요긴하게 쓰였다.

칼날에는 언제나 연필의 흑연 알갱이가 더덕더덕 붙어 있어서 칼로 자르고

나면 잘린 빵의 양면에 까맣게 묻고는 했지만 누구하나 까만가루가 묻었다고

불평하지 않았고 가루가 더럽다고 그 부분을 떼어 내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맛있게 잘도 먹었다

 

그런데 빵이라는 게 제 아무리 자로 잰다고 해도 반으로 정확히 잘려지지 않는다.

 

언제나 큰 것과 작은 것이 구별되어 지는데 이럴 때면 두 조각의 빵을 두고

가위 바위 보를 한다.

 

승자는 큰 것 패자는 작은 것으로 나누어지고 지는 쪽은 언제나 불만이 가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 시절만 해도 남녀 칠세 부동석이 유지되던

시절이어서 짝꿍이 여자가 아니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빵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우리는 동구 밖에 올 때 까지 빵을 아껴가며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오래도록 즐기며 먹었다.

 

이 빵은 후진국의 식량지원을 위해 미국에서 원조 해준 빵이라는 것을

알게 된것은 그 뒤로도 한참 후였다

 

그 시절 빵이라고 해 봐야 팥소(앙꼬)도 없는 평범한 빵이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이 보다 더 맛있고 구수한 빵을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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