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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삽을 들고 **웃음꽃과 이야기 꽃을***가꾸고 있는 소담의 작은 화단입니다

♣ 꽃밭에 앉아42

삶의 여정(餘情) 오늘은 토요일! 어머님이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날이다 그러니까 일주일 전. 집안에 기일이 있어서 고향에 가는 길에 어머님을 모시고 이곳 김해로 왔다 팔순의 노모는 세상지리에 어두워 아파트를 오갈 때 열쇠가 아닌 버튼식의 도어락은 그야말로 마음대로 외출을 할 수 없을 만큼 요즘세상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오신 분이시다 그러다 보니 맞벌이 부부인 와이프와 나 학생인 딸과 아들 제각기 출근과 등교를 하고나면 집에 남은 어머님은 온 종일 텔레비전을 보다가 이따금씩 베란다에 의자를 놓고 바깥풍경을 바라보는 게 하루의 일과였다 일주일 내내 이렇게 지내시던 어머니께서 오늘은 다른 여느 날 보다 더 빨리 일어나셨다 세수를 하고 곱게 단장을 마친 어머님. 오늘도 어머님은 습관처럼 조용히 베란다로 나섰다 한참동안 어딘가를 멍하.. 2013. 4. 13.
주머닛돈이 쌈짓돈 오늘은 내가 사는 이곳 김해 장유의 장날이다 3일과 8일 오일간격으로 닷새마다 펼쳐지는데 사실 말이 장이지 장의 규모는 내 세울 것 없을 만큼 매우 작다 그렇지만 분위기만큼은 아담한 시골장터를 꼭 빼 닮았다 마치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화개장터처럼 있는 것은 다 있고 없는 것은 없지만 시골 장터로서의 왁자지껄한 풍경은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와이프와 함께 장에 들르기로 했다 수레를 끌고 장에 가는 길.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향하는데 장터에는 이미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때마침 여기저기서 장꾼들의 호객행위가 이어졌는데 신이 난 와이프는 용케도 부르는 곳마다 잘도 찾아가서 물건 사기에 바빴다 슈퍼에서 5만원을 가지면 살 것이 없다고 늘 볼멘소리를 하던 와이프도 오늘 만큼은 얼굴에 환한 미소가.. 2013. 1. 23.
옹정 팔경(甕井 八景) 옹정 팔경(甕井 八景) ● (제1경) 독우울의 달밤 독우물은 옹정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전라도 말로 돌을 독이라 부르기도 하고 도가지를 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 독우물은 이처럼 독에서 물이나온다고 해서 독우물이라고 부른다 지금의 옹정이라는 이름은 독우물을 한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옹기옹(甕)에 우물정(井)을 써넣어 甕井(옹정)이라 부르고 있다 독우물은 물이 맑고 시원하며 제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끊이지 않는다 이 샘물은 옹정의 서당고샅에 자리 잡고 있는데 삼면(三面)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아래가 둥그렇게 오목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런 지형 때문에 여기에 뜬 달은 신기하고 오묘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다 삼면에 에워싸인 달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두 손을 펼쳐.. 2012. 2. 17.
사부곡 (思父曲) 한 아이가 누워있는 아빠의 배위에 올라앉았습니다.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아빠는 아랫도리에 있는 아들의 고추(?)를 따서 입가에 대고 후루룩~요란한 소리와 함께 맛있게 먹는 시늉을 짓습니다. 아이는 이런 아빠의 표정이 신이 나는지 싱글벙글 어쩔 줄을 모릅니다. 다시 아빠가 아들에게 조릅니다. 아가! 고추 좀 따 줄래! 신이 난 아들은 자기의 고추를 따서 계속해서 아빠의 입에 대줍니다. 한 번,두 번,세 번 후루룩~~~ 후루룩~~ 후루룩~ 그럴 때 마다 아이의 웃음이 자지러집니다. 그렇게 아이와 아빠는 한참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 위 풍경은 소담이 세 .. 2012. 2. 6.
365일이 딸랑 한장에 참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 2012년 달력을 받아들고 새 달력이 나왔네! 하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새해도 벌써 닷새를 넘기고 있다 우리 회사 사무실 책상에는아직도 새 달력이 여기저기 많이 남아 있다 직원들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일부러 구해다 놓은 것인데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먼지만 하얗게 뒤집어 쓰고 있는 달력들... 보다못한 경리 직원이 달력들을 펼쳐 들더니 자를 대고 에이포 용지 크기로 자르고 있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고 이면지로 쓸 생각이란다. 달력에 사진이나 칼라 그림이라도 있었으면 진즉 주인을 만났을 텐데 그림이 없고 숫자만 덩그러니 있다보니 젊은 사람들은 이런 달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숫자만 나와 있는 달력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더러 계시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림이나 사진이 있는 달.. 2012. 1. 5.
추억의 급식빵 야! 당번 빨리 빵 타와~~~ 초등학교 시절 종례 무렵이면 너나없이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잠시 뒤 당번이 양동이를 들고 소사 아저씨를 찾아 가는데. 그 사이 성질 급한 몇몇 아이들은 미리 복도로 마중을 나갔다. 마침내 당번이 돌아오고. 이때 마중나간 친구들이 외치는 소리에 따라 교실안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와! 하나씩 돌아간다. 이 한마디에 교실 안에 있던 우리는 함박웃음과 함께 교실이 떠나 갈 듯 박수를 치며 신이 났다 빵이 양동이에 가득 차는 날이면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돌아가는데 당연히 신이 날 수 밖에........ 하지만 양이 절반으로 줄어 든 날에는 다들 풀이 죽었다. 이런 날에는 하는 수 없이 짝꿍과 함께 반으로 나누어 먹어야 했는데. 이때는 연필 깎는 칼이 요긴하게 쓰였다. 칼날.. 2011. 12. 12.
무밥과 무생채 소싯적에 새벽녁이면 깊은 잠을 깨우는 소리가 있었다. 썩썩썩 무를 써는 소리. 앞집에도, 옆집에도, 뒷집에도 썩, 썩, 썩 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새벽녘. 어머니는 늘 새벽같이 일어나서 무를 썰었다. 무써는 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눈을 비비며 어머니의 손길을 바라보았다. 동그랗게 썰어진 무가 가지런히 놓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무채로 변하기 시작했다. 무채는 다시 옆으로 돌려서 썰게 되는데 이때 밥알처럼 크기가 작게 변했다. 얘야, 무줄까!!! 어머니는 파란 무 머리를 동강내어 먹기좋게 한 조각을 내 입에 넣어 주셨다. 아삭 ................. 이불 밑에서 맛보는 무의 향기! 약간 매운 맛도 풍기면서 어찌나 시원하던지. 마침내 햇살이 밝아지며 아침 밥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무밥은 강된장에 비며 먹어.. 2011. 12. 4.
막걸리의 추억 나는 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양주는 싫고 소주는 안주에 따라 가린다. 어쩌다 술 생각이 나면 막걸리를 마시는데 적당히 포만감도 있고 그리 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 체형에도 잘 맞는 것 같아서 가끔씩 반주로 막걸리를 즐긴다. 나는 막걸리를 살 때 절대 대형 마트에 가지 않는다. 달랑 그것 한 병 사겠다고 줄서는 것도 싫고 남세스러워서 주로 아파트 단지 내 점방으로 간다. 물론 가격차이야 감수를 하지만 줄을 설 필요도 없어서 좋고 검정 비닐봉지에 포장도(?) 잘 해준다. ㅎㅎㅎ 나는 술을 일찍 배웠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에 취기를 느껴 보았다. 어른들이 모여서 놀다보면 자연스레 술이 어울리기 마련인데 이때 술이 있으면 꼭 안주가 있는 법! 소싯적 어는 비오는 날. 어른들이 부침개를 부치기 시작했다. 그때.. 2011. 12. 1.
고구마에 대한 애상(哀想 ) 요즘 언론에서 흔하게 오르는 말이 하나 있다. 베이비 붐 세대! 1953년생부터 1963년생까지를 두고 베이비 붐 세대라고 하는데....... 지긋 지긋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그 날. 밤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 시대 갑자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 하였다. 형제들은 많고 먹을 것이 부족해서 늘 배가 고팠던 그 시절 고구마는 우리들의 주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구마를 캐는 날! 행여 생채기가 날까 보물을 캐 듯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했다 상처 난 고구마는 저장 중 가장 먼저 썩기 때문에....... 이렇게 수확이 끝나고 나면 생채기 난 고구마는 걸러내고 토실토실 한 고구마만 골라내어 하룻동안 햇빛에 잘 말린다 고구마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대나무를 쪼개서 대발을 엮는데 처음과 끝을 잇고 세.. 2011. 12. 1.
짜장면의 추억 찬 바람이 부는 어느 봄 날. 아침을 먹는데 작은 형님이 나를 불렀다. 소담아! 오늘 논으로 거름을 내야 되니까 밥먹고 다른데 가지 말고 기다려라! 행여나 내가 밥을 먹고 놀러가기라도 할까봐 노심초사 하던 형님이 일찌감치 내게 선전포고(?)를 했다 잠시 후 형님이 리어카에 거름을 잔뜩 실고 출발을 하는데 그때 마다 건성으로 밀고 있다고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감히 형님 앞에서 짜증을 낼 수도 없었다. 띠 동갑이다 보니 나이차이가 열두 살이 나는데 어느 누가 이 숫자 앞에서 감히 대들 수 있겠는가! 논은 멀고, 거름은 많고, 리어카에 실어야 할 량은 정해져 있고 많이 실어야 횟수를 줄일 수 있다는 건 어린 내 마음도 알고 있었지만 어찌나 거름을 많이 실었든지 힘이 버거웠다. 마침내 언덕길 앞에.. 2011. 11. 5.
아 ! 성건네 내 고향에는 *요천수라고 부르는 강이 있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장수군 번암면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쳐지며 강을 이루는데 이 강을 우리 마을에서는 "성건네"라고 불렀다. 한강의 상류인 춘천에 남이섬이 있고 서울에 밤섬이 있다면 우리 마을 앞 요천수에는 "성건네" 라는 섬이 있었다. 다리가 없던 그 시절. 이 섬을 건너가야 뚝 건너쪽 송동에 있는 논밭을 갈 수 있었기에 마을사람들은 이 섬을 건넌다고 해서 "섬건너" 라고 불렀다. "섬건너"는 세월이 흐르면서 "성건네"로 변했는데....... "성건네"에는 군데군데 밭이 있었고 뽐뿌라 나무 라 불리었던 포플러 나무가 여기저기 아름다운 경치를 더해주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천막을 치고 천렵을 즐겼던 기억이 새롭다. 이 섬 .. 2011. 8. 15.
추억의 금지극장 1970년대 초반. 면 소재지이자 내 고향인 우리 마을 옹정에는 한 때 극장이 있었다. 혹여! 의심이 많은 분들은 이렇게 물어올 지도 모른다. 촌에 어떻게 극장이 있을 수 있느냐고? 산업화 물결이 일어나기 전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 마을은 313가구에 인구수가 1,766명 이나 되었다. 요즘 4인 가구를 기준으로 계산해도 무려 440가구가 될 만큼 마을이 엄청나게 큰 규모였다. 덕분에 나는 그 시절 영화배우 이름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장동휘. 독고성. 이대엽. 박노식.허장강 박암. 김승호 그리고 윤정희. 김지미, 꼬마신랑 김정훈 등등……. 부잣집 아들도 아니고 맨날 영화만 보았을리 없지만 그 시절 배우를 이렇게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극장의 존재가 나에게는 컷다는 뜻이다 가진 돈은 없고.. 2011. 7. 24.